Better than a dream
보스턴에는 지난 며칠간 깨끗하고 포근한 눈이 넉넉히 쌓였다. 처음 이곳에 왔던 십여 년 전만 해도 11월이면 온 동네가 눈에 파묻혀 지붕까지 올라가 눈 치우기 바빴는데, 최근 몇 년은 정말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1월은 돼야 함박눈을 보게 된다. 결혼 14주년인 어제도 우리가 결혼했던 그날처럼 모든 것을 덮는 큰 눈이 내렸다. 결혼 15년 차로 들어간다는 것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데, 그것은 열다섯 살에 엄마 품에서 떠났던 나에게 이제는 남편이 부모님보다 나와 더 오래 산 사람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학교 때부터 내 인생 단 하나의 꿈은 성공하는 것도,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닌 좋은 부부가 되는 것이었다. 진짜 그랬다. 그렇게 불같은 사랑을 하고도 지금은 죽지 못해 산다는 우리 부모님의 결혼생활은 '그저 아이를 낳아 책임을 지고 희생하기 위해 영위하는 것이 결혼일까?'라는 질문을 갖게 했고, '딸 팔자 엄마팔자 닮는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이미 불행의 유전자라도 심기운 듯 움츠러들게 했다. 사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주변의 그 어떤 어른들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남편의 흉을 보고 아내 조롱하기에 바빴고, 은연중에 서로의 집안에 대한 무시와 상황에 대한 비난이 농담 속에 묻어났다. '나는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그게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는 한 걸까?'라는 의문은 늘 내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여름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와서 엄마 몰래 여기저기 <부부세미나>를 들으러 다녔다. 4년 다닐 대학교를 위해서도 그렇게 청소년기를 쏟아부어 공부하고, 5년 10년 다닐 직장과 직업을 위해서도 그렇게 온 젊음을 바쳐 공부하면서, 왜 앞으로 50년을 같이 살 배우자와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도 공부하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부부세미나들에 가보면 '이 사람이 이런 줄 몰랐다'며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 신혼부부들 아니면 '이제는 애들도 다 컸고 지긋지긋해서 못 살겠지만 이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노력해 보겠다'라고 온 중년의 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스무 살짜리 여자애는 나 하나였다. 다들 '넌 여기 왜 왔니?'라는 궁금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하지만 난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게 된 미래에서 온 소녀처럼 맨 앞에 앉아서 눈에 불을 켜고 제일 열심히 노트 필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우리 부모님도 알지 못해 나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 부부란 무엇이고 가정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지. 나의 역할은 무엇이고 무엇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말이다.
부부와 결혼생활이라는 주제로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며 <이 부부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라는 당돌한 제목을 뽑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부부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어서? 절대 아니다. 중년의 시작이라는 압박과 함께 사춘기 아이를 키우며 덩달아 겪는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커리어적으로, 시간적으로, 심리적으로, 관계적으로 가장 분주하고 복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부만을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고 예전만큼 감정이 말랑말랑하지도 않다. 그럼, 부부 싸움 없이 사는 비결이라도 알고 있어서? 실망을 안겨드렸다면 죄송하지만 그 또한 아니다. (나는 오늘 아침 남편의 무심한 태도 때문에 지금도 좀 삐져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너무 화목한 양가집안에서 자라 행복한 가정에 대한 팁을 공유하기 위해? 그거야 말로 확실히 아니다. 남편은 부모님이 초등학교 때 이혼하신 후 그에 따른 필연적인 아픔들이 있었고, 나 또한 부모님이 미국-한국 기러기 부부 생활을 10년 넘게 하시며 '너네 아니었으면 벌써 이혼했다'는 소리를 밥 먹듯이 들으며 자랐다. 양가 부모님 세대에서 (그리고 주변의 어떤 어른들에게서도) 안정적인 부부상을 보고 배울 수 없었다는 것은 어렸던 우리 부부에겐 큰 불안요소였다. 그럼 우리 부부가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너무 풍요롭고 안정되어 싸울 일이 없어서? 그 역시 아니다. 학생 부부로 정부 보조금 받으며 맨땅에 헤딩하기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자칫하면 너무나 거센 원망과 불평, 비교와 낙심의 소리에 휩싸이기 십상이었다. 그럼 혹시 우리 부부의 성격과 성향이 너무 찰떡같이 잘 맞아서? 극강의 ESTP와 극강의 INFJ의 만남. 즉, 하나도 겹치는 부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회로 자체가 아예 달라서 서로를 볼 때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뜨악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상황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이 결혼은 처음부터 해야 할 이유보다는 해서는 안될 이유가 더 많았다. 우리는 이제 갓 서른과 스물여섯으로 너무 어렸고, 돈은 한 푼도 없었으며, 상황적으로 모든 것이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15년 차가 된 지금, 내가 태어나서 진심적으로 가장 잘한 일은 이 사람과 결혼 한일. 그리고 여전히 문제는 일상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그와 가정을 지키며 하루하루 사는 삶이다. 우리 부부에게 뭔가 다른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 글을 연재해 가며 발견할 것 같다. 하지만 이 글들을 마무리할 때쯤엔, 아니 어쩌면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쯤엔 손자 손녀들이 우리에게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뭔가 다른 게 확실히 있어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물어봐준다면 성공이겠다.
우리와 같이 빈약하고 볼품없는 품종의 도토리들로부터 울창한 그늘이 되어주는 떡갈나무가 자라날 수 있다면. 그런 은혜가 있다면 말이다.
• Soli Deo Glor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