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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Jan 27. 2024

100개 항목의 배우자 위시리스트

몇 개나 이루어졌을까?


당신은 무엇이 간절한가? 누군가의 은밀한 간절함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어느 영역에서 가장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지 들여다보면 쉽게 반증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명예와 인정에 목말라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업적이 축소되거나 이름이 드러나지 못할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할 테고, 돈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늘 재정상태에 온 신경이 휩쓸려 있기 마련이다. 또 배움과 학업에 대한 결핍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녀의 학업적 성공을 통해 그것을 상쇄하려 발버둥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 사람에겐 너무나 중요한 가치이기에 본능적으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안간힘을 쓴다. 성취에 대한 갈망과 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정비례하니까. 나의 경우엔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평온한 가정을 꾸리는 것만큼 간절한 건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하는 부부상을 본 적도 없고 그것은 마치 유토피아의 유니콘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그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아 불안했고 조급했다. 열다섯 살에 미국에 와서 시작된 떠다니듯 외로운 이방인으로써의 삶도 얼른 가정이라는 뿌리를 내림으로 안정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연애를 많이 해본 것도, 소개팅을 줄줄이 한 것도, 선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더 필요로 했던 것 같다.  마침 스물다섯이 되던 해,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네가 정확히 원하는 배우자의 모습이 어떤 건지 100개의 리스트를 작성해 봐. 그걸 놓고 기도하면 나중에 배우자를 만났을 때 그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잖아."


오오 선생님이여.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100개의 조건을 걸어놓고 누굴 만날 때마다 100개의 잣대로 난도질을 하라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미성숙한 짓이었는지 자명하지만, 스물다섯의 어리고 간절했던 나는 너무나 분별력이 없고 말을 잘 듣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날 집에 돌아와 깨끗이 목욕재계를 한 후 숙연히 내 방에 앉아 엄숙하게 리스트를 써 내려가며 밤을 지새웠다. 그분은 아마 '그렇게 디테일한 리스트를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지 알 수 있다'는 뜻으로 그런 조언을 해주셨던 거 같은데, 그 또한 얼마나 하나님을 램프의 요정쯤으로 오해하고 내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는 분으로 전락시킨 건지 그때는 몰랐다.


밤늦도록 리스트를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완벽한 운명의 남자가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 쓰는 대로 된댔지. 믿는 대로 된댔어.' 그런데 아무리 호기롭게 시작했던들 100개의 리스트를 채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 '키는 나보다만 크면 됨.' '내가 하는 농담에 박장대소해 주는 사람.' 그렇게 30여 개 정도 쓰다 보니 더 이상은 아무리 쥐어짜보아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빛나는 리스트를 한번 쭉 훑었을 때 공통점은 결국 단 하나였다.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줄 사람.' 순간 등줄기가 서늘했다.


'이 남자는 뭔 죄란 말인가.'


1번부터 100번까지 순서를 매겨놓고 핑크빛 기대감으로 시작한 리스트에서 채우지 못한 나머지 70개의 빈 항목들은 미래의 우리 관계를 삼킬 듯한 블랙홀처럼 보였다. 이 결핍의 블랙홀을 채워줄 남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런 남자도 없을뿐더러, 그것은 아주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관계의 서막일 테지. 그래서 그 100개의 리스트 종이를 찢어 버린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기준이 없을 수는 없고 소망할 푯대까지 없을 수는 없으니, 내가 배우자를 놓고 구할 때 정말 타협할 수 없는 3가지는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1.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신앙적으로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남자.

2. 사랑 많은 가족 안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자.

3. 무엇이 되었든 자신의 분야에 탁월함이 있는 남자.


'아무리 그래도 이 세 가지는 부끄럼 없이 구할 수 있다' 생각하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막상 기도를 시작하니 '그런데 과연 나는 저런 남자에 걸맞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어딘가 있을 그도 지금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텐데, 나는 그의 기도에 응답이 될만한 사람인가. 그래서 그를 향하던 기도는 결국 나를 향한 기도로 방향이 전환되었다. 내가 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내가 그에게 어울리는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게 해달라고.


실제로 이렇게 배우자 기도를 적극적으로 시작한 지 일 년이 채 안돼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첫 만남부터 꼭 일 년 후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럼 100개도 아니고 고작 3가지의 기도제목은 다 이루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중 2가지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졌다. 언젠가 신혼 때 남편에게 내가 저런 기도제목을 갖고 기도했었노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저 중에 2개가 이루어진 거 같다고. (순간 '아차, 내가 저 말을 왜 했지. 저 중에 안된 것도 있다고 하다니..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내 주둥이를 때리고 싶은 찰나) 남편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하나는 살면서 채워주려고 하시는 거지." (남편의 훌륭한 성품 중 하나가 바로 쉽게 offend 당하지 않는다는 건데, 그는 정말 무언가로 코팅이 된 사람처럼 충분히 화낼만하고 공격받았다고 여길만한 상황에서도 웬만해선 공격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쉽게 상처받는 나에게는 매번 놀라운 광경이다). 그리고 결혼 15년 차에 접어든 지금, 그의 말대로 마지막 한 가지 기도제목조차 천천히 계절에 맞게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혼과 부부생활을 주제로 한 글을 연재하기로 마음을 먹고 글쓰기를 시작한 날부터 남편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참 이상했다. 다툼을 한 것도, 무슨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남편을 향한 불평과 정죄감들이 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남편을 향한 판단과 냉랭함으로 우리 관계를 냉각시켰다. 나는 그의 삶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거 같다고 비난했다. 그것은 현숙한 아내로 가장했으나 실은 이기적인 여왕놀음에 지나지 않았다. '나를 우선으로 하지 않은 당신의 우선순위는 잘못되었다'라고. 나는 여전히 그가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충족시켜 주길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포도원이었다. 견고한 울타리와 망대가 둘러져있고 그 너머엔 꽤나 풍성한 열매들도 보였다. 하지만 들어가 보면 포도나무마다 있어야 할 포도송이들이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도둑맞았다. 빼앗겼다. 나무 밑에 짓이겨졌다. 범인은 바로 작은 여우들이었다. 튼튼해 보였던 울타리에 뚫린 작은 구멍들로 들락날락거리며 내 포도원의 좋은 열매들을 훔쳐간 여우들을 나는 불평만 하느라 막지 못했다.


'당신은 날 항상 받아줘야 해.' 여우가 망대를 뚫는다.

'당신은 변하면 안 돼.' 여우가 열매를 뜯는다.

'당신은 내 필요를 채워줘야 해.' 여우가 포도원을 휘집는다.


크지는 않지만 오히려 작아서 간과해버리고 마는 자연스럽고도 교묘한 자기중심적인 생각들은 이렇게 결혼이라는 포도원을 해치고 만다. 100개로 시작했던 이기적인 기대들은 30개로 또다시 3개로 줄어들었다 한들 내 안에 깊이 뿌리 박힌 내 중심성 self-centeredness이 있는 한 내 포도원에는 소망이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사랑해야 한다. 아무 조건 없이도 사랑할 수 있다. 아무 조건이 없어서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내 포도원을 지켜낸다.


Zero expectation. Full acceptance.



결혼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 안락한 삶의 발판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며, 내 뿌리 깊은 결핍과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나를 허물기 위해 존재한다.

그 성벽의 허물어짐으로 나는 다시 사람들이 살만한 도시로 세워질 것이다.


나는 그를 깎아 다듬기 위해 존재한다.

그 깎아짐으로 그는 비로소 새롭고 완전한 걸작품이 될 것이다.



• Soli Deo Gl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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