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cho Aug 15. 2022

실리콘밸리에 소속되려 노력했던 나의 시간들

혼란이 왔던 이곳에서의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살면서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고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냥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어디엔가 소속되고자 하는 노력한 적도 없다. 다 나와 같은 사람이 사는 우리나라인데 내가 고민할 것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방문자와 비방문자와의 괴리감 


초등학교 시절 약 1년 반 정도 미국에서 지냈었다. 그 당시에 거의 백인들이 다수인 곳에 살았는데,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인종이 대부분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에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첫 수업 날에도 전혀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자연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한국에서 종종 하던 "쎄쎄쎄"나 "종이접기" 등의 놀이를 내가 오히려 전파하는 본의 아닌 앰버서더 역할 등을 하기도 하였다. 그때 당시만 해도 South Korea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고,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 나라를 알리는 만무 했다. 동양인도 우리 학교에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눈에 띄었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행복하게 지냈다. 무지가 약이 되었던 순간들이지 싶다. 


대학교 당시 교환학생을 왔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캘리포니아로 교환학생을 두 번 왔었고 워낙 동양인이 많기도 했지만 교환학생이라고 하면 다 그냥 끄덕끄덕거리는 정도에 내가 여기 있는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어 하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South or North?"라고 되묻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한 경험들도 종종 있었지만, 나는 어릴 때 살았던 때와 같이 좋은 추억만을 가지고 한국에 다시 귀국했다. 


세월이 지나 서른 살 즈음에 미국에 온 것은 아예 이야기가 달랐다. 일단 그 전에는 방문자이었다면, 이번에는 "편도" 비행기를 끊고 온 비방 문자에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곳에서 세금을 내고, 이민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방문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언제 한국에 다시 갈지 기약은 없는 거주민 (Resident)가 된 것이다. 




소속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 


소속감이라는 것은 비단 학교, 직장 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 느꼈다. 즉,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소속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회사를 가려 Caltrain (산호세와 샌프란시스코를 왕복하는 기차)을 타면 그 기차에 탄 사람들과 나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정말 실리콘밸리에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으로 마치 영화를 관람하듯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공간을 관찰했다. 이곳은 아시안이 많기 때문에 비단 인종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고, 무엇인가 모르게 내가 다른 곳에서 막 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 것만 같은 느낌으로 나는 어딘가 붕 뜬 기분이 들었다. 


“I was within and without, simultaneously enchanted and repelled by the inexhaustible variety of life.” 
- The Great Gatsby 



심지어 그들이 무슨 옷을 많이 입는지 유심히 살펴보며,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Patagonia를 입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친환경 등 좋은 비전을 내세우고 있는 이 브랜드는 진보적인 이 동네에서는 (다른 곳에서도 그렇겠지만) 매우 인기 있는 브랜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그 브랜드의 옷이 한점도 없었던 나는, 이곳에 도착하여 1달 채 안됬을 때에 Patagonia 패딩을 사서 입기도 했다. 그 옷을 구매하게 되었던 계기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상당히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고 나의 상황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튀고 싶지 않기도 했고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내가 이곳에 소속되고 싶어서 구매했던 파타고니아 패딩. 지금 보면 조금 웃프기도 하지만 그때는 정말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이곳에 온 몇 주 이후 나를 이곳에 오는 것에 도움을 준, 나의 멘토와 같은 VP와 함께 아침식사를 회사에서 같이 한 날이 있었다. 당시 근황들을 서로 공유하다가 나는 내가 회사에 무슨 옷을 입고 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튀고 싶지 않고 이곳 사람같이 보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때 나의 멘토는 약간 놀라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며, 또 이런 말을 덧붙였다. 


"Just bring yourself to this work place!" 


즉 나 자신을 그대로 보이라는 말이었다 (남에게 해가 되는 옷이 아닌 이상, 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조금 특이하게 옷을 입은 다른 동료를 가리키며 (그 동료는 자전거를 타고 왔기 때문에 자전거용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이처럼 모두들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회사에 가져오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나다움을 회사에 가져옴으로써 그것이 바로 우리 회사 다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대화 이후부터 놀랍게도 나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조금씩 생겨났다. 물론 그때의 대화 이후 갑자기 소속감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종종 그날의 대화가 생각나고, 늘 마음속에 담고 기억하려 노력한다. 나에게 진정으로 큰 힘이 되었던 조언이었다. 


지금은 이곳에 온 지 거의 4년이 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나의 소속감에 대해 전처럼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 어떤 옷을 입는 것에 대해 남의 시선에 대해서도 별 신경 쓰지도 않는다. 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역시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나도 정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만약 이전의 나처럼 새로운 곳에서 소속되고 정착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우선은 시간이 지나면 많이 해결되는 부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어렵지만 나다움을 보이는 것이 새로운 곳에 소속되는 과정의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곳과 잘 융합되는 길을 발견하시길 응원의 말씀을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사뭇 낯선 점심시간의 풍경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