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지척에 널려있다.
대학 시절 미국 교환학생을 왔을 때, 아주 간단한 문장을 어떻게 하면 원어민처럼 써야 하는지 잠깐 고민했던 적이 있다. 카페에 갔는데 "라떼 한잔 주세요."를 원어민들은 뭐라고 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직역인 "Give me a latte please"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유심히 귀 기울였다.
"Can I have a latte please?"
아! 이렇게 간단한 문장인 것을! 별거는 아니지만 나는 바로 그 문장을 따라 해서 즐겁게 커피를 시켰다.
나는 이렇게 늘 주위에서 하는 말들을 유심히 듣고, 내 머릿속에 저장하고, 따라 하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들이 오늘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어라는 것은 "보고 따라 하기", 혹은 "듣고 따라 하기"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 상황에 맞는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 많은 경우 가장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회사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바로 무한한의 배움이 있는 곳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는 임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기 때문에 All-Hands (우리나라로 치면 간단회 같은 임직원 간 모임)이 꽤 많이 있다. 이러한 미팅은 대부분 다 녹화를 하고 공유를 한다. 더욱이 코로나 이후에는 비대면으로도 미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녹화 자료가 무척이나 많이 있다.
임원이나 리더들은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말을 잘하지 못하면 애초에 리더가 되기 힘들었을 테고, 또 많은 임원들은 실제로 스피치 레슨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따라서 이렇게 말을 잘하는 리더들이 말하는 녹화 자료는, 아주 좋은 배움의 리소스가 된다. 물론 나의 업무 자체에도 도움이 되지만, 그 임원들이 말하는 영어 phrase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나면 늘 이러한 녹화 자료를 보면서 그 임원들이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관찰하고 경청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구절들이 있으면 그 구절을 통째로 외우곤 했다. 더욱이 말을 시작할 때 어떤 구절을 쓰는지, 어떤 식으로 결론을 짓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등 여러 방면으로 집중해서 녹화 자료를 보고는 했다.
놀랍지 않게도 이러한 임원들이 자주 쓰는 말, 혹은 단어들이 있다는 것이다. 말하는 속도, 톤 등은 다르지만 그 리더들이 어떤 공식처럼 쓰는 영어 구절들이 많이 있었다. 어찌 보면 매일 일상생활에서는 많이 쓰지 않을 비즈니스 언어라고나 할까? 이러한 구절들을 그냥 통째로 외워두면 어느 상황에서나, 특히 회사에서는 큰 쓰임새가 있다. 애플이 아이폰 론칭할 때 스티브 잡스의 발표 자료가 굉장히 좋은 발표라고 많이들 참고하고는 하는데, 굳이 그렇게 멀리 갈 필요 없다. 자신의 회사의 임원 및 리더들의 녹화 자료를 보면 도움이 되는 발표 자료들이 많고 자기의 업계에 꼭 맞는 발표 자료들이기 때문에, 이를 우선으로 활용하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자기가 닮고 싶어 하는 리더가 있으면 금상청화다. 그 사람의 언어적 기술을 조금씩 따라 하며 배우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면, 어느새 이전보다는 훨씬 말을 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또 하필 말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실리콘밸리에는 이민자들이 굉장히 많고,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그중 많은 사람들은 엔지니어 등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런 업무에서는 테크니컬 한 능력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영어를 꼭 아주 유창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의 첫 회사에서는 비즈니스 쪽에 있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MBA 출신부터 소위 말빨로 먹고사는 (?) 사람들이 많아서 기가 죽어있던 상황이 많았었다.
그러나 내가 특별히 회사 안에서도 말을 잘하는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하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추후에 깨닫고 나서, 이런 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하게 된다면 실리콘 밸리 어디서든 생존 혹은 그 이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정신승리를 하기 시작했다. 프레임을 바꾸어 이러한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것을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 공짜로 받는 수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임원들의 발표자료와 마찬가지로, 동료들과의 미팅도 어찌 보면 하나의 배움의 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 말을 좀 잘하는 동료와 이야기할 때, 그 동료가 자주 쓰는 phrase나 단어가 멋져 보인다면, 그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기억해 두었다가 추후에 써먹기도 하였다. 특히 원격으로 회의를 할 경우, 나는 항상 자막 보이기 기능을 켜 두어서, 혹시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자막을 보고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그런 단어들은 노트에 기록을 해 두어 까먹지 않게 한 번씩 보고, 어느 정도 익숙 해 지면 노트를 보지 않고도 이제 내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특히 회의를 주재하는 것에 처음에는 자신감이 많이 없어서, 괜히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주눅들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 회의 시작을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끝맺음을 어떻게 하는지 유심하게 관찰했다. (우선 처음과 끝만 잘해도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어구가 있으면 그걸 기록해 두었다가 내가 회의를 주재할 때 그대로 써먹고는 했다. 예를 들어 회의 시간이 끝나 갈 때 쓰는 "We are at time" 이라던가, 회의를 다 마치고도 x분의 시간이 남았을 때 쓰는 "We can give everyone x minute back" 등 캐주얼한 말이지만 회사에서는 매일 쓰는 관용 어구들을 금방 숙지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또한 동료들과는 미팅을 할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대화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대화 속에서 문화적/언어적 요소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물론 회의할 때처럼 일부로 단어 등을 노트에 받아 적지는 않았지만, 자주 어울리는 동료들이 쓰는 말들은 금세 적응이 되어 나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구절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자신감이 크게 붙기 시작했다.
말하기는 이처럼 발표 녹화 자료나 동료들과의 회의 및 대화에서 배울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고, 쓰기의 경우에는 역시 동료 및 리더들이 만든 문서 등을 보면서 배울 수 있다. 회사에서 글쓰기는 아주 수려하고 다양한 단어를 쓸 필요가 없이 요점만 잘 요약하고 쓰면 되기 때문에 그 포맷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한국에 비해서 조금 더 직설적이기 때문에, 이메일의 경우에는 오히려 적기 쉬울 수가 있다. 이메일은 미사여구 제외하고 바로 요점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높임말 등이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직급 등 고려할 필요없어 오히려 적기가 더 쉬운 것 같다.
한 연구의 결과, 영어의 경우 약 800 단어 정도만 알면 75% 정도의 일상 언어는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복되는 비즈니스 단어 및 구절들만 익숙 해 지면 적어도 영어로는 부끄럽지 않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즈니스 영어는 회사에 다니면서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경우, 회사는 업무를 하는 곳만이 아니라 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돈도 벌고 언어 실력도 쌓을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그때 그때 새롭게 배우는 것들을 기록해 두면 그것이 쌓여서 자산이 되고, 또 나만의 실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일하러 온지 4년 반쯤 된 나는 이 배움의 장에서 매일 새로운 것을 듣고, 배우고, 기록하며 연습하면서 조금씩 더 성장하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