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두 아들과 싱글맘, 이민 가방 세 개만 들고

by 조이 킴




초등학생 두 아들과 이민 가방 세 개만 들고


뉴질랜드에 온지 거의 4년이 되어간다. 한국에서 반평생을 살았으니, 다음 반평생은 좀 더 글로벌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선택한 뉴질랜드행. 기존에 한국에서 쌓아왔던 모든 기득권(뭐 특별한 것은 없다. 그저 같은 언어, 같은 경험, 익숙한 체계와 질서,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이런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기득권이었던 것을 이제서야 뼈저리게 느낀다)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타향 살이를 두려움도 없이 시작했다.


사람들이 항상 말하지 않나? 이렇게 힘든 거라는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라고…


허니문 기간-새로운 경험에 대한 흥분과 설렘을 느끼는 시기-이 지나고 나면, 늘 그렇듯이 사는 것은 그저 ‘일상’이다. 그러니, 그 일상을 어떻게 일구어 가느냐가 결국 총체적인 이민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생 두 아들과 이민 가방 3개만 달랑 들고 와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일. 친구도, 친척도, 아는 사람도 없이 시작한 뉴질랜드 생활은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나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초기 정착은 나 자신의 능력치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주기도 했다.



내 생 처음 도전해본 목공과 페인트칠



가장 기초가 되는 의식주에서부터 가능하면 많은 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일구어보고자 했던 강렬한 열망,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없는 낯선 곳에 나 자신을 던져버린 배수진 같은 환경이 나를 매일 움직이게 만들었고, 또 강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무료 혹은 매우 싼 가격에 배달이 되는 한국의 문화에서 스스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삶으로의 관점의 이동은 낯설고 막연했다. 평생을 ‘속도와 효율’ 속에서 살았던 삶의 태도와 남의 손과 서비스에 의존하던 습관을 완전히 버려야만 했다. 특히 가구를 사기 위해 트레일러를 차에 매달고 운전하는 법을 익히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한다는 터프한 조교 후아니타

기계나 도구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트레일러 운전은 상당한 도전이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트레일러 한 번 보고… 이를 깨물며 상당히 터프한 조교(?)-이 곳에서 집을 구하기 전 한 달 동안 머물던 에어비앤비 주인 할머니, 후아니타Juanita다-의 가르침에 임했던 기억이 새롭다.


전기와 배관만 빼고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한다는 후아니타를 뉴질랜드 생활 처음부터 만난 것은 실로 큰 행운이었다. 그녀의 일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린 두 아들을 둔 싱글맘이 낯선 땅에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장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녹록치 않을 거라는 것. 늘 도전일 것이므로 날마다 용기를 낼 것. 그리고 두 아들과 따뜻하고 웃음 넘치는 일상을 꼭 챙겨 갈 것. 그런 것들을 마음에 새겼던 시간이었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삶. 그러나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삶. 바로 그 삶 속으로 나는 뛰어들고 있었다.



나를 도와 정원 일을 하는 아이들









그럼에도 타향살이는 쉽지 않았다


잠깐 스쳐가는 곳으로서 뉴질랜드와 이민자로서 경험하는 뉴질랜드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절약을 위해 자발적인 가난한 삶을 지향했던 첫 해의 삶의 태도는 가난으로 내몰리는 듯한 삶으로 바뀌고, 영어 좀 할 줄 아는 한국인의 지위에서 모든 상황에서 적절하게 말할 줄 모르는 이민자로 전락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선택적 소셜 라이프가 어쩔 수 없이 선택이 강제되는 환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선택하는 삶에서 선택되어지는 삶. 영주권을 위해 직업도 선택되어지는데 더 말해 뭐 하랴? 자유를 찾아 떠났던 땅에서 오히려 환경에 구속되는 역작용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섬유근통 증후군이란 지병을 견뎌온 나의 건강은 거의 지천명의 나이에 도전한 석사 학위 공부를 기점으로 빠르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큰 돈을 빌려서 학비를 조달했기에 미처 지친 몸과 마음을 돌 볼 겨를도 없이 현지 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을 시작한지 3개월만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덮쳤고, 막 자리 잡기 시작한 작은 일상은 미처 기지개 한번 켜보지 못하고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뉴질랜드에서 얼른 공부를 끝내고 직장을 구하는 것, 그것이 지상 최고의 목표인 양 달려오고 있던 나에게 예기치 못한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동안 억눌려온 다양한 삶의 욕구들은 미처 채워질 겨를도 없이 내동댕이쳐졌다.


불면의 밤이 두려웠다. 아이들 아침밥과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아침이 오는 것도 두려웠다. 밤마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빠져들었을 때쯤 나는 불현듯 이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우울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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