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죽음과 닮아서 였을까? 당시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이대로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아침. 그 아침마다 나는 끝없이 밑으로만 가라앉는 몸과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침대 속에 몸을 묻고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한 자락 마음 들어올리기가 중력과 씨름하는 것 같이 힘겨웠다. 하지만 내 이름 석자로서의 삶은 끝내고 싶은 그 상황에도 두 아들의 엄마로서의 삶은 결코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 아들들은 키워내야하지 않나.'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이 들어 그 길로 병원을 찾아갔다.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고, 추가적인 심리 상담 예약도 잡았다. 다행히 뉴질랜드의 공공 의료 시스템과 다른 한 기관인 크라이스트처치 이민자 센터의 도움으로 무료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 이 마음의 병에 대한 혹은 이 증상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과 대화가 절실했기에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두 군데 모두 좀 기다려야 했지만, 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참으로 고마운 통로가 되었다.
그리고 상담을 기다리는동안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원과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절실했다. 당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지만, 그 한 친구가 고맙게도 가족도 친척도 없는 타향살이에 지쳐있던 내게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나누어주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한 후부터 날마다 내 상태를 묻는 안부 전화를 해 주었고, 첫 의사 방문시에도 함께 해 주었으며, 또 집으로 와서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함께 먹기도 했다. 가족도 친척도 없는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잘 알기에 선뜻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나누어 주었으리라……. 참 고마운 사람이다.
덕분에 기운을 내어 예전에 읽었던 긍정 심리학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우울을 극복할 계획을 짰다. 우울증 약을 잘 복용하는 것은 물론 몸을 많이 움직이기로 했고, 규칙적으로 명상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리상담사가 더욱 기다려졌다. 기분은 나아지고 있었지만, 내 적나라한 심리 상태와 내면까지 모두 다 꺼내어 터놓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내 안에서 쌓이고 묵혀 곪아 터져 시큼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이야기들을 당장 꺼내 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두 곳으로부터 연락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나의 우울증은 약 복용으로 인해 상당히 호전된 상태였다. 젖은 솜 뭉치 마냥 밑으로만 가라앉던 몸과 마음은 약 복용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산뜻하게 가벼워졌다.
기다림 끝에 첫번째로 만난 뉴질랜드인 상담사는 나의 낮은 자존감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었다. 그녀는 평소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기쁘게 해 주려는 내 경향성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것이 내 일상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깨닫도록 해주었다. 남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내 감정을 소모하다 결국엔 지쳐버리거나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상담사는 7남매 중 막내로 자란 나의 성장 환경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을 심었을 수도 있겠다는 수긍을 이끌어내주며 내가 예로 든 상황에서 본인은 이러 저러하게 한다며 여러가지 가능한 선택지를 보여주었는데,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너 자신에게는 투철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라'
내가 매우 오래 전 듣고 마음에 새겼던 문장이다. 물론 좋은 뜻의 문장이지만, 나는 그동안 이 문장을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내 삶에 가혹하게 적용해왔던 듯하다. 남들에게는 부탁도 거절하기 어려워하고, 싫은 소리도 못 하면서 막상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은 한 번도 좋아하고 만족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 자신의 관심, 돌봄, 그리고 사랑을 받지 못한 나의 몸과 마음에게 매우 많이 미안해졌고,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해 본 기억이 없던 나로서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지하기 어려웠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나 자신에 대한 외부로부터 또 내 내면으로부터의 부정적인 평가들을 비워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격려와 응원, 그리고 애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나누어받는 일을 다른 사람의 호의에 맡기기보다는 '직접 해보자'라고 생각하니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리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했던 칭찬과 나의 장점으로 꼽아주었던 것들에 집중하고, 그것에 더 무게를 실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크라이스트처치 이민자 센터에서 만난 심리 상담사는 이민자로서 날마다 곤두박질 치는 내 자신감을 다시 끌어 올려 주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민 후 매일 언어 장벽과 문화적인 다름에 치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보니 볼품없이 쪼그라진 자신감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심리상담사는 그녀 자신 또한 이민자였기에 내가 묘사한 나의 내면의 상태를 너무나 잘 이해했다. 사회적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고사하고, 모든 자원에 접근하는 것마저 쉽지 않은 이민자들은 너무 쉽게 스스로의 사회적 지위를 2등 시민으로 규정하게 되는데, 절대 그것을 용납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더 나아가, 우리 이민자들은 적어도 2개의 언어는 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낯선 이국 땅에서 새로 인생을 개척할 만큼 용기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마도 그녀 자신이 이곳에서 심리 상담사가 되기까지 어쩌면 지금까지도 늘 스스로에게 해 주는 말이었으리라.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내가 뉴질랜드에 오기 전, 한국에서 살며 이루었던 일들(예를 들어 영어 학원을 세우고 운영했던 일 등)을 기억해내고 이야기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그 일들이 내 어떤 자질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기억하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도록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낯선 이민자로서의 생활이 어려웠을 뿐이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이루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그 과정에서 쪼그라들었던 자신감이 서서히 펴지는 걸 느꼈다. 내 눈빛에 생기가 돌고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많이 웃고 있을 즈음, 그녀는 내게 그 모든 것을 이루어 낸 사람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용기를 주었다.
또한 당시 나는 낮은 자존감과 자신감과 더불어 이혼한 엄마로서 느끼는 아이들을 향한 죄책감,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열등감 등 부정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생각들로 마음이 가득차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내면의 상태를 깨달음과 동시에, 과거는 과거에서 매듭짓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지금보다 어렸던 것이 분명한 나 자신을 포함해 내 과거와 연관된 모든 이들을 단호하고도 깔끔하게 용서하기로 했다.
각각 세 번, 네 번의 상담을 끝으로 나는 상담을 종료했다. 두 상담사 모두 내 표정이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을 지켜보며 인상적인 상담자라고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상담은 내가 원하면 조금 더 받을 수도 있었지만 조금 이른 시기에 상담을 종료한 이유는 핵심적인 원인 파악이 되었고 스스로 이겨낼 힘이 충분히 생겼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과거의 내 부정적인 생각의 패턴은 다시 돌아오곤 했는데, 그렇게 될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용서의 빗자루를 들고 나쁜 기운들을 열심히 쓸어냈다. 거실에 앉아 명상을 했고, 한 호흡 또 한 호흡 들이쉬고 마실 때마다, ‘살아있음에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음’에 감사했다.
우울증으로 가는 생각의 습관은 그 뿌리가 깊다. 어떤 뇌신경과학자는 우리의 몸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했다. 몸에 깊이 새겨진 습관과 패턴을 짧은 시간에 온전히 몰아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의 대책은 늘 간단할 것이다. 내 내면의 낡은 것들이 또 쌓이면 통째로 내다 버리는 것이다.
내가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으로 떠나오면서까지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는, 단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닌 내 낡은 세계관과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시작되는 여정임을 깨닫는다. 나는 오늘도 신새벽에 일어나 마음을 청소하고 새로운 아침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