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국제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헤더라는 친구가 있다. 헤더는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뉴질랜드에 오기 전 미국에서는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을 돌보는 일들을 했었다고 한다. 늘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는 성품 덕분인지 그녀는 이 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는데, 그런 헤더가 두 달 전 쯤 북섬에 있는 웰링턴 지역으로 새로운 직장을 얻어 떠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웰링턴으로 떠나기 직전 그녀는 손수 간단한 송별 파티를 열었다.
뉴질랜드에 사는 좋은 점 중 하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헤더의 송별회에서 한국에서 온 나와 미국, 영국, 인도네시아, 남태평양, 뉴질랜드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던 젊은 미국인 커플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맷(Matt)과 클레어(Claire).
늘 그렇듯이,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취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내 취미를 물어오는 맷에게 나는 트랙킹을 좋아하며, 내 꿈 중의 하나는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을 걷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자 마자 클레어가 반색을 했다. 마침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몇몇의 친구들과 밀포드 트랙킹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예약했던 8명 중 한 명이 빠지게 되어 한 자리가 공석이라며, 혹시 내가 함께 갈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다.
분위기의 흐름상 바로 ‘Yes’라고 답해야 하는데, 오랜 세월 섬유근통 증후군에 시달려온 몸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근래 통증이 없어지기는 했다지만, 3박 4일 동안 먹을 음식을 모두 짊어지고 50km 이상을 걸어야 하는 그 코스는 현재로서는 과하다는 게 내 몸의 첫 반응이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일주일의 생각할 시간을 줄 것을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If you think you can do a thing or think you can’t do a thing, you’re right. -Henry Ford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 생각이 옳다. -헨리 포드”
그 친구들을 만났던 때가 10월 18일. 크리스마스까지 2달 정도 남아 있던 때였다. 남은 2달여 동안 체력 훈련을 하면 밀포드 트랙 완주가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무엇보다도 언제까지 인생의 꿈을 뒤로 미루며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 마음을 고양시키고 추동하는 열망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며칠 후 나는 밀포드행을 결정하고 나름대로 훈련 계획을 짰다. 그리고 클레어에게 밀포드행에 합류하겠다고 알린 뒤, 그 주말 첫 훈련에 돌입했다.
거의 2년여 만에 포트 힐(Port Hills)에 올랐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나의 꿈에 한 발자욱씩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에 집중했고, 내 몸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강하다고 주문을 외웠다. 써밋 로드 쉼터까지는 생각보다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리틀턴 항구와 왼쪽의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전경이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나의 첫 훈련을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 머리 바로 위로 낮게 드리운 하늘 아래 앉아 사과를 먹으며 천상의 맛이 이런 맛일까 하고 감탄하며 풍경에 젖어 있자, 내가 애초에 왜 뉴질랜드에서 삶을 개척하고자 했는지가 다시금 떠올랐다.
돌아보면 한국을 떠나 올 때 모든 세간살이와 소지품을 정리하면서도 끝까지 챙겼던 것은 작은 등산 가방과 등산복이었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좋아했기에 뉴질랜드의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속에서의 오래 걷기를 즐기며 평화롭고 느린 삶을 살자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뉴질랜드 이민 첫 해에는 주말이면 자주 근처 산을 오르고 바다로 나가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생각보다 힘든 이민자로서의 삶으로 인해 나의 소박한 꿈도 서서히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되었다. 여러 트랙킹 코스들에 도전해보리라던 꿈은 어디로 가버리고,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애써 자기 위안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실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은 늘 우리의 꿈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헤더의 송별회, 우연히 꺼내놓은 나의 꿈, 그리고 맷과 클레어의 크리스마스 계획. 이 일상적이고 작은 에피소드가 겉으로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우주의 섬세한 손길이 만들어낸 ‘운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이 내 손에 주어진 티켓 한 장! 그것은 다시 꿈을 꾸는 인생, 그리고 그 꿈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인생을 살라는 우주의 응원인 것만 같다.
내가 살고있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부터 밀포드 트랙킹이 시작되는 테 아나우라는 도시까지는 편도 8시간의 운전을 해야 닿을 수 있다. 나는 다행히 내려갈 때나 올라올 때 각기 다른 커플들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나의 동선과 교통편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같은 그룹의 사람들에 의해 이미 짜여져 있었고, 클레어가 단체 메일로 정해진 사항을 안내해주었으며, 나는 그저 일부 주유비용과 숙박비를 내기만 하면 되었다.
맥키넌 패스에서도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맥키넌 패스는 밀포드 트랙킹 코스 내에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자 이 편과 저 편을 가르는 고개로서, 아름다운 하늘과 여름에도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들 그리고 피요르드가 만들어낸 장관을 볼 수 있는 트랙킹 코스의 정점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4계절을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뉴질랜드 날씨로 인해 맥키넌 패스에서 어떤 날씨를 맞이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바람이 치면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어렵고, 강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굉장히 위험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맥키넌 산 정상에 오르던 세번째 날 아침, 우리가 머무르던 민토스 산장 산지기가 그 날 종일 비가 올 것이라는 암울한 일기예보를 전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둘러 떠났고, 우리 그룹과 다른 한 가족만이 가장 늦게 산장을 출발했다. 날씨 예보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우리가 고개 정상에 도착할 즈음엔 비가 갤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밤부터 꽤 많이 내리던 비가 정상 도착 즈음부터 차차 개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그 장대한 경치를 우리 앞에 펼쳐 주었다. 3박 4일의 여정을 함께 하는 인디펜던트 워커(Independent Walkers) 40명 중에 내가 속한 두 그룹만이 그 멋진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날씨마저 완벽했다. 늘 행운에서 제외되어 왔던 인생이(적어도 그렇게 생각해 온 인생이) 처음으로 운이 좋은 그룹에 속하게 되는 진기한 경험을 한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빼어난 절경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고 그 순간을 몸에 새기고 있을 때, 이 모든 여정의 중심에 있었던 클레어가 내게 소리쳤다.
"The Universe wants you to be here!(우주가 너를 이 곳에 원하고 있어!)"
그 순간 내 전신을 휩쌌던 전율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그녀의 외침은 우주가 내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로 들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깊은 염원으로 이 우주, 나의 진정한 자아는 내가 어둠에서 깨어나 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다려왔을까.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발을 들여놓자마자,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는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다시 꿈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자, 그동안 저 우주 공간에 나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일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전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던 통증과 우울의 사이클로 인해 '삶은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쓴 뿌리가 늘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밀포드 트랙킹은 시작부터 끝까지 행운이 얼마나 내 가까이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확인시켜 주었다.
맥키넌 산 정상에서 느꼈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순수한 기쁨과 감사, 그리고 경외감…….
밀포드 트랙킹은 내게 ‘인생의 꿈을 소중히 여길 것,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나 자신을 신뢰할 것, 무엇보다도 인생은 좋은 것이며 온 우주가 감응하여 나의 삶을 응원하고 있음을 믿을 것'을 확인시켜 준 유쾌한 동시발생 사건이며, 내게 행운이 따르고 있음을 몸소 경험케 함으로서 앞으로 내딛는 내 발걸음에 힘을 실어준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