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초, 시현이가 10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일을 하고 있다가 시현이가 여러 번 문자를 한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오전 시간이어서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문자를 했을까 갸우뚱하며 답을 했다. 시현이는 학교에서 몸싸움이 일어나서 자신은 지금 교실이 아니라 학교 사무실 한 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부모가 와서 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자신을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겪는 일에 놀란 마음을 안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교감선생님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시현이가 그 주에 한 번은 여학생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경고를 받았고, 또 사건 당일 아침에는 한 남학생을 밀쳐서 몸싸움에 연루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일로 시현이와 그 남학생에게 귀가 조치가 내려졌고, 또 반성하라는 의미로 하루 정학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사춘기인 아이들이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아 발생한 일인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게 사안을 설명했다.
일단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 상황이 종료되었고, 상대 남학생은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기에 나도 시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자초 지종을 물으니 시현이가 상당히 억울하게 휘말린 사건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시현이와 같은 반인 한 여학생이 시현이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몰고 온 아시안'이라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고, 시현이는 그 말에 발끈해서 눈 앞에 보이는 그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 일로 두 아이가 교감실로 불려갔고, 서로 사과하며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다음날부터 그 여학생이 속한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학교에서나 방과 후에 시현이를 둘러싸고 계속 자극했다. 나이도 더 많고 덩치도 큰 남학생들이 떼로 자신을 겨냥하니 시현이도 긴장이 된 것은 당연했다. 하루는 학교 밖에서 그 무리가 시현이를 둘러싸고 조롱을 하고 있는 모습을 지나가던 학교 선생님이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다 몸싸움 당일 아침, 상대 남학생이 시현이의 길을 막으며 코앞까지 다가와 '여학생이나 때리는 놈'이라며 시현이를 비난하듯 놀렸다. 시현이는 자동반사적으로 그 아이를 밀쳤고, 그것을 시작으로 그 아이가 시현이를 때렸다. 시현이는 자신을 방어만 한 채 그 아이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에 휘말리지 말라는 평소 나의 당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싸움으로 시현이는 귀를 다쳐 피를 흘렸고 또 그 해 생일 선물로 받은 귀 피어싱까지 분실했다.
시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을 때, 사건의 전말을 몰랐던 나는 학교의 조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돌아왔다. 시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제서야 나는 이 싸움이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던 교감선생님한테 화가 났다. 그리고 전체적인 일 처리가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당장 학교로 달려 가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화요일에는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일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 주말 동안 시현이에게 먼저 집중하자 생각했다.
시현이는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한 판단에 앞서, 엄마가 학교에 불려 온 것과 정학을 받게 된 상황 등에 대해 내게 미안한 마음이 컸던 모양이었다. 문제가 일단락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은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나는 시현이가 본인도 놀라고 충격을 입은 가운데서도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못내 속이 상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몸싸움이 아니라, 인종 차별과 개인의 정당 방위를 두고 학교가 부당하게 대처한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을 아이에게도 가르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는 너무 놀라서 자기 방어도 제대로 못해 억울한 마음, 일방적으로 맞은 것으로 인한 분한 마음, 생일 선물로 받은 피어싱을 잃어버려서 속상한 마음, 그리고 자신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가해자와 동일한 벌이 주어진 불공평한 처사에 대한 마음 등 시현이가 느꼈을 법한 여러가지 감정을 직접 하나씩 마주하도록 했고,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말해 주었다.
마침 주말 동안 우리 집에 놀러 온 내 친구 두어명이 사건의 전말을 듣고 시현이 편에서 같이 화를 내 주었다. 특히 20대 중반의 키위(뉴질랜드 현지 백인들을 이르는 말) 청년이 그 남학생과 학교의 조치에 대해 시원한 욕을 날려 주었는데, 그것이 시현이에게 일종의 안도감을 주었던 듯하다. 엄마는 늘 제 편이니, 제3자들의 의견이 시현이에게 좀 더 설득적이었던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시현이가 이 상황과 감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였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난 뒤, 나는 공책을 꺼내고 시현이와 탁자에 마주 앉았다. 시현이에게 시간대별로 그림을 그려가며 조금의 숨김도 없이 이번 사건을 묘사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정학 후 있을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하고 싶은 말들을 포인트별로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앞으로 뉴질랜드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인종차별 대우에 대해 시현이가 감정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번 일을 기회삼아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이번에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것처럼 시현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랐고,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지를 배우길 바랐다. 나는 나대로 엄마로서 교장 선생님에게 할 말을 정리했고, 그것을 시현이에게 보여주었다.
면담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교장실을 방문했다.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 동안, 시현이는 먼저 그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것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주의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남학생과 벌인 몸싸움에 대해서는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음을 하나씩 설명해 나갔다. 자신은 그 상황에서 정당방어를 한 것이고, 그에 대해서 상대 남학생과 동일한 처벌을 받은 것에 대해 불공평하게 느낀다는 말도 했다.
또한 며칠 동안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자신을 예의주시하며 도발해서 상당히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과, 오늘 아침 주차장에서도 그 그룹 중 한 남학생이 시현이가 엄마와 함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현이에게 위협적인 눈총을 보내며 지나갔다면서, 아직도 종료되지 않은 듯한 상황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있음을 선생님에게 말했다. 교장 선생님은 그에 대해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겠으며, 혹여 비슷한 일이 발생하거든 주저없이 교장실로 오라고 말해주었다.
시현이가 말을 하는 동안 나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 앉아 있었다. 그것을 교장선생님은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시현이에게 말하게 하고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시현이와의 대화가 끝나자 엄마인 나에겐 질문이나 설명도 없이 미팅을 종료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안 되겠다 싶어 나도 드릴 말씀이 있다며 나섰다.
나는 교장 선생님에게 첫째, 사건의 핵심은 몸싸움이 아니라 아시안 혐오라는 인종차별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또한 피부색으로 인한 부당한 대우로 입게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도 몸의 상처만큼 중요하다는 내 의견도 전달했다. 시현이가 그 여학생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나, 그 여학생이 장난치듯 던진 '코로나 바이러스를 몰고 온 아시안', '너희나라로 돌아가' 라는 말들은 평생 이 곳에서 아시안일 수밖에 없는 시현이에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일보다 더한 폭력이었을 수 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공평함(Fairness)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학교 측의 대응-인종차별 발언을 한 여학생과 시현이가 서로 가벼운 사과 한 마디를 주고받음으로써 화해하도록 한 것, 시현이에게 몸싸움 시비를 건 남학생과 시현이에게 똑같이 하루 씩의 정학 처분을 준 것-이 정말 '공평한' 처벌이었는지, 전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눈 먼' 공평함의 사례는 아니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혹여 다음에 발생할 수 있는 비슷한 상황에서는 전체 맥락을 고려한 ‘공정한’ 판단이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교장 선생님은 다행히도 후속처리를 잘 해 주었다. 이번 일과 관련된 학생들 모두에게 매우 진지한 경고를 주었고, 이메일을 통해 내게 그 사실을 보고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학생들에게 '문화적 다양성'에 관해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미국 애틀랜타 한 마사지숍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으로 미국에서 ‘Stop Asian Hate’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맞추어 뉴질랜드의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행진을 했다. 작년 흑인들의 차별 반대 시위였던 'Black Lives Matter' 운동 때처럼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뉴질랜드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또 아시안으로서 너무 반갑고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흑인들의 인권이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만큼 여기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와 남태평양 사람들의 인권 문제가 주로 대두된다. 하지만 수많은 아시아인들 또한 이 곳 뉴질랜드에 살면서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려진 적이 없다.
피부색과 인종을 바탕으로 한 차별과 폭력이 애초부터 없어야 마땅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사람의 권리가 공평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가 또 그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려져야’ 한다.
더러는 뉴질랜드는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떤 형태로든 차별을 당하게 되면 자존감에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자기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시현이와 시후는 이 사회에서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영원히 ‘아시안’일 것이다. 내 아이들이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불편 부당함에 주눅들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강하고 당당한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자기 몫을 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