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어쩌다 유명 영어 강사가 되다'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뉴질랜드까지 온 이상,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현지인들과 접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상 생활의 모든 상황을 말할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런 결심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뉴질랜드 사람들이 유난히 친절하고 느긋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긴장하며 사는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해 봤을 텐데… 긴장을 내려놓고 이들의 친절함과 느긋함을 잘 활용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엔 속 터져 죽을 것만 같던 그들의 느림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여기 뉴질랜드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 날씨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날씨에 대해 인사를 건네고 이 곳 사람들과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나는 한국의 날씨, 한국 집들의 난방시스템 등에 대해서 묻지도 않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더 나아가 내 개인적인 이야기도 풀어놓으며 대화를 더 길게 이어간다.
집 카페트를 새로 할 때는 네 군데 다른 회사에서 견적을 받게 되어, 같은 내용으로 네 군데 직원들과 대화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메일과 전화가 오고 갔고, 직원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나야 카펫은 난생 처음 깔아보다보니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등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을 물으며 새로운 지식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영어 어휘와 표현도 함께 따라왔다. ‘카펫’이라는 주제에 노하우가 쌓이면서 두 번째, 세 번째에는 더 쉬워졌다. 첫번째 회사 직원들과 대화를 하며 습득한 영어 표현을 다른 회사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써먹었고, 또 새로운 것을 배웠다.
나는 집에 방문한 직원들과 카펫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고, 묻지도 않는 이야기들, 즉 한국과 뉴질랜드의 다른 점, 또 나의 개인사들까지도 나누었다. 한 번도 말로는 해보지 않았던 단어, 문장 구조들을 활용해서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다음에는 다르게 말해야 겠다는 판단이 들면 다른 비슷한 상황에서 실제로 그렇게 했다. 이런 식으로 거의 매일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했다. 타이어가 펑크 났을 때, 차에 이상이 생겨서 서비스를 불러야 했을 때, 집에 전기와 인터넷을 연결 할 때 등등 상황은 얼마든지 많았다.
매주 일요일이면 집 근처에 있는 선데이 마켓에 간다. 선데이 마켓은 일종의 벼룩시장 같은 곳으로, 그 지역 농산물과 중고 물품 그리고 푸드 트럭들이 모여 있다. 내가 매번 선데이 마켓에 갈 때마다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블랙 포레스트 와플 가게’다. 와플 가게 주인장은 뉴질랜드에 30여년째 살고 있는 일본인, 마미 (Mami)다.
와플 가게에는 마미가 손수 만든 목재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데, 처음 몇 주 거기에 앉아 있어 보니,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서로 알지는 못해도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속으로 ‘아, 이거다!’ 하면서 무릎을 쳤다. 그 이후로 나는 특별히 살 것도 없이 매주 선데이마켓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남는 것이 시간이니 두 아들에게 와플 한 개씩 물려주고, 나는 그 테이블 죽순이가 된다. 와플 먹으러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성이 오피서(Officer)인 마미의 와플 가게 단골의 이름에 얽힌 재미나고 구성진 이야기를 몇 주에 걸쳐 시리즈로 듣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있는데, 이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집 화장실 페인트가 벗겨져서 핸디맨 (Handyman)을 불러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핸디맨은 월요일마다 나가던 한 교회의 영어 교실 선생님이 소개해준 키가 큰 키위 아저씨였다. 그 분이 처음 집에 온 날, 나는 날이 꽤 추워서 따뜻한 커피를 권했다.
집에 일하러 온 사람에게 차나 커피를 권하는 일은 여기 뉴질랜드에는 없는 문화다. 나와 기꺼이 커피를 마시는 그분과 집에 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그 핸디맨이 이후로 3주 정도 우리 집에 와서 4~5시간씩 일을 했는데, 올 때마다 나는 커피를 권했고, 그 아저씨는 의례껏 30분 정도는 커피를 마시며 나와 수다를 떨었다.
핸디맨들은 일하는 시간만큼 비용을 청구하는데 이 아저씨가 그 30분은 빼 주었다. 나와 수다 떠는 시간이라고. 그 분이 나중에는 본인 커피와 함께 내 커피까지 사오기도 했고, 이듬해 내가 첫 취직에 성공해 받은 주급으로 함께 카페에 가기도 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당연히 ‘영어’다. 대개 현지 사람들에게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의 대화도 말하기 실력을 향상시키기에 매우 좋다. 개인적으로 나는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과 대화를 할 때 가장 유창하다. 뉴질랜드인들과의 대화에서 느끼게 되는 긴장감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민자들 대부분이 비싼 어학코스를 듣기 보다는 교회나 도서관 등 커뮤니티 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무료 영어에 고개를 기웃거리게 된다. 나도 공공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이민자들을 위한 독서 클럽에 참여했다. 한달에 한번 어렵지 않은 책을 읽고 모여서 한시간 동안 말하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취지는 좋으나 영어 늘리기에 열을 올리는 우리 이민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첫 책 모임이 끝나고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나는 우리끼리 <영어 토론 클럽>을 만들어서 매주 만나는 것이 어떻겠는지 제안했다. 그러면서 우리집 거실을 장소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찬성을 했다. 그렇게 이름하여 <Joy’s English Club>이 매주 금요일 오전에 열리게 되었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주제를 미리 멤버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영화, 다큐멘터리, 테드 톡, 뉴스 기사 등 자신의 현재 관심사에 따라 주제도 포맷도 다양한 내용들이 공유되었다. 그 주 발제자가 토론할 내용을 정리해서 해당 토론을 이끌어 가는데, 이 모임을 뉴질랜드에 발을 들인 첫 해부터 시작해서 2년을 지속했다. 나는 늘 핸드 드립 커피를 준비했고, 참석자들은 쿠키나 파이 등을 들고 찾았다.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독일 사람들의 액센트가 있는 영어 교실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영어와 강한 액센트를 인내심 있게 견뎌 주었다. 뉴질랜드인들 앞에서는 이야기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포기해 버렸지만 내심 하고 싶었던 말들도 끝까지 할 수 있는 격려의 시간이었다. 영어도 배웠지만,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삶을 나누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삶의 지혜들이 쏟아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힘든 마음을 기대는 시간들이었다.
영어가 생존이요, 삶의 질을 가르는 척도가 되는 녹록치 않은 이민자들의 삶이 생생히 숨쉬는 시공간이었다. 이렇게 나의 영어는 드디어 책에서 벗어나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 안에 ‘소리 없이’ 쌓여 있던 영어 어휘들과 문장의 구조가 드디어 그 진짜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종이와 활자 안에 갇혀 있던 영어가 소리를 만나고, 나아가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을 만나 진정한 의미를 주고받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제 나에게 영어는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 구사가 중요한 공부 과목이 아닌, 의미를 주고받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며 관계를 쌓아 올리는 삶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