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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킴 Jul 20. 2021

쉰, 커피와 샐러드




삼신 할미, 우리 효정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나의 어린 시절, 엄마는 늘 내 생일을 (물론 오빠들과 언니의 생일도) 특별하게 챙겨 주셨다. 


생일 아침이면, 엄마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여러가지 맛있는 음식들로 푸짐한 생일 상을 준비하셨다.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방 윗목에 짚 한 줌을 깨끗하게 다듬어 두고 그 위에 생일 상을 놓았다. 나는 세수를 하고 엄마가 준비해 놓으신 옷을 단정하게 입고 생일 상 옆에 앉았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엄마는 생일 상 앞에 무릎을 꿇고 삼신 할미께 중얼 중얼 기도를 올렸다. 엄마가 진실로 삼신 할미를 영험한 신으로 믿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삼신 할미는 그저 엄마가 어린 딸의 건강과 행복을 의탁해 볼 수 있는 높고 큰 힘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 힘 앞에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이 세상에 나온 이 아이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나는 삼신 할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 절대적인 힘이 내 삶을 도우리라는 기대도 크게 하지 않았다. 또한, 평상시엔 먹을 수 없는 산해 진미로 가득 찬 아침 밥상 위에도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생일 아침이면 늘 행복했다. 생일 아침이 주는 분위기와 느낌이 참말로 좋았다. 여름 한 날의 이른 아침, 정갈하고 경건한 그리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나의 마음은 풍선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하늘로 두둥실 떠다녔다. 여러 날 전부터 배를 타고 읍내에 가서 사온 것들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엄마, 또 나를 위해 그 누군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엄마를 보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작은 가슴이 마구 부풀어 올랐다. 


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바람처럼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쉰, 커피와 샐러드


세월이 훌쩍 지나, 2021년 7월 12일, 나는 만 오십 세가 되었다. 


엄마가 하늘 나라로 가고 없는 세상에서 맞이하는 나의 오십 번째 생일 아침, 엄마 대신에 어린 두 아들이 내 생일 상을 차린다고 부엌에서 부산스러웠다. 아침 9시경, 방안에 감금되었던 나는 드디어 (아이들이 내 생일 아침상을 차린다며 내가 거실과 부엌에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후 손에 이끌려 거실로 나왔다. 


식탁 위에 놓인 것은 매일 아침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과 평소 즐겨 먹는 샐러드였다. 



생애 처음으로 아들들이 엄마를 위해 준비한 생일 상이었다. 각자 쓴 생일 카드와 작은 선물도 놓여 있었다. 마음으로는 풍선도 달고 생일 장식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음처럼 재현되지 않은 생일 상을 쑥스러워하는 시현이와 자신이 엄마를 위해 준비한 커피와 선물을 보며 자랑스러워하는 시후. 


감탄과 함께 활짝 웃는 나를 보며 나보다 더 기뻐하는 아들들이었다.


단출하기 그지없는 생일 상이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의 사랑이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엄마를 기쁘게 할까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작은 것이라도 ‘마음이 깃들인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생일 상을 손수 차리고는 싶은데, 평소 밥과 라면, 계란 프라이가 할 줄 아는 요리의 전부인 아들들에게 미역국을 만드는 것은 너무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다소 생뚱 맞아 보이는 그 생일상은 내가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잘 아는 데서 탄생했던 것이다. 


먹을 줄만 알지 한 번도 샐러드를 만들어 보지 않은 시현이는 그동안 어깨 너머로 나의 샐러드 레시피를 익힌 듯 보인다. 얼마 전부터는 시후가 뜬금없이 핸드 드립 커피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더니… 녀석들, 보기보다 센스 넘친다. 스스로 번 용돈으로 마련한 생일 선물과 마음을 들여 쓴 카드도 나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그 옛날 엄마의 기도처럼


한편 아이들이 부엌에서 바쁘던 그 시간, 나는 침대에 누워 ‘나의 태어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름 땡볕에 밭에서 김을 매다가 엄마는 나를 낳았다. 내 위로 언니 한 명과 오빠 다섯을 이미 낳은 엄마는 딸 하나를 더 얻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태어난 날, 집안 식구들 모두 기뻐했다. 칠 남매의 막내딸이라서 나름 예쁨과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다시 현재, 벽을 타고 부엌으로부터 들려오는 두 아들의 들뜬 소란을 들으며, 아이들도 내가 태어난 날을 즐거워하는구나 생각하다가, 나는 나의 태어남을 진심으로 기뻐한 적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오랫동안 내게 생일은 몇 명의 친구가 혹은 어떤 친구가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가를 헤아리던 날이었던 것 같다.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가 혹은 인기가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내 생일의 주인공은 나이건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으로 기쁘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어이가 없다.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우리 엄마가 정갈한 생일상 앞에서 올리던 그 기도를 떠올린다. 그저 건강하고 무탈하게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온갖 실수와 넘어짐에도 여기까지 걸어온 삶이 대견하고 소중하다. 깨진 흔적들과 상처들이 모두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동안 부족하다고 느꼈던 나의 어떤 부분들마저 이제는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것들 때문에 나는 비로소 ‘나’가 되었고, 또 되어 감을 깨닫기 때문이다. 


여전히 서툴고 실수투성이일 것이지만, 아마도 나는 그 부족함과 실수들에 관대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김효정’ 표 실수와 불완전함을 소중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오십이 된 것을 환영해!


나의 오십 세를 두고 주변에서 ‘드디어 오십이 된 것을 환영한다’며 많이들 축하해 주었다. 육십 세가 넘은 한 친구에게 오십이라는 나이가 왜 특별하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친구 왈,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그 자신에 대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져, 비로소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칠십 세가 넘은 내 키위(뉴질랜드 사람) 친구 웬디Wendy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I don’t think you know anything until you’re 50.

오십이 되기까지는 (인생에 대해서) 뭔가를 안다고 하기는 어렵지."


그들의 대답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생일 날 아침, 내가 깨달은 삶의 비밀 같은 것을 공유함에서 오는 반가움이 일었다. 사회인이 되어가며 외부의 잣대와 평가와 씨름하던 삶을 지나, 오십의 생일을 맞아 이제는 잃어버렸던 나의 자아를 되찾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내 생일엔, 나 스스로가 나의 태어남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가장 첫번째 사람일 것이고, 이제는 그것으로 만족하리라는 것을 안다. 나머지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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