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킴 Aug 11. 2021

미쉘이 된 마이클

너의 안녕과 행복을 빈다



미쉘이 된 마이클


나: 마이클, 오랜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후아니타 : 얘 이제 마이클이 아니고 미쉘이야.
나: 진짜야, 마이클? 아니, 미쉘?
미쉘: 응, 맞아. 이거 새로 고친 출생신고서야. 지금부턴 미쉘로 불러주면 고맙겠어!


벌써 4년 전 일이다.  어느 일요일, 마미의 와플 가게에 앉아 있는데 마이클(가명)과 후아니타가 마침 그 곳으로 왔다. 꽤 오랜만에 만나는 마이클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더니, 마이클은 새로 고친 출생 신고서를 보여주며 자기 이름을 미쉘(가명)로 바꿔 불러줄 것을 부탁해왔다.






내가 뉴질랜드에 처음 갔던 해에,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해 후아니타의 집에 게스트로 묵고 있을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후아니타의 집에 놀러온 마이클을 만났다.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알게 된 뉴질랜드 현지인 남자였다. 그는 시간이 있을 때면 후아니타와 나를 도와주었고, 이를 계기로 우리 셋은 같이 식사도 하고 차도 마셨다. 


어느 날은 마이클이 요새 부업으로 액세서리를 인터넷에서 팔고 있다며, 자기가 만든 것들을 몇 가지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모두 여성용 액세서리였다. 그는 그것들을 하나씩 내게 선보이며 뿌듯한 표정으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는데, 사실 팔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보였고 일단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그저 ‘마이클이 여성 패션 쪽에 관심이 많구나’라며 가볍게 넘어갔었다. 


그렇게 마이클과 친구가 되고 몇 달 뒤, 후아니타가 마이클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이클이 인터섹스(Intersex – 성적으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들 혹은 둘 다인 사람들)라는 것이었다. 게이, 레즈비언, 그리고 트렌스젠더는 들어 보았어도 '인터섹스'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개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Born Both


그런 내게 마이클은 한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에서는 히다 빌로리아(Hida Viloria)라는 사람이 자신이 쓴 ‘Born Both(양성으로 태어나다)’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인터섹스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여성 성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여자 성기 중 일부가 남자 성기를 닮아서 마치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또한 남성 호르몬이 굉장히 많이 분비되어 상당 부분 남자처럼 행동하고 가슴이 매우 작아서 얼핏 남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매우 여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마이클의 설명과 히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나는 ‘인터섹스’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그 존재 형태도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라는 전통적인 성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고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구 천 명 중 한 명은 인터섹스로 태어난다고 하니, 꽤 많은 인터섹스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대부분 곧바로 한 쪽의 성을 제거하는(혹은 변형하는) 수술을 받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터섹스 아기들은 의학적, 즉 건강상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수술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지 태어난 아기를 ‘남자' 아니면 '여자’로 분류하고, 그 성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영상에 나온 히다의 경우, 태어났을 당시 의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수술을 받지 않고 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매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태어나자마자 받은 수술로 인해 오히려 건강에 문제가 생긴 다른 인터섹스들을 그가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의 소원 중 하나는 인터섹스로 태어난 아기들이 ‘수술 없이 있는 그대로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마이클은 어린시절 남자로 '정의'되어 커 왔지만, 사춘기 시절에 생리를 했다. 하지만 생리혈이 몸 밖으로 나올 통로가 없어 몸 안에서 돌다 독이 되었다. 마이클은 원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다가 거의 죽기 직전에 병원에 가서 원인을 찾아냈는데, 그때까지 자신의 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었던 마이클은 본인이 두 개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났으며, 태어난 직후 의사가 수술을 통해 여성 성기를 없애고 남성 성기만을 남겨두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수술이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난 여성 성기만 제거했던 것이어서, 사춘기가 되며 몸 속에서 만들어진 생리혈이 몸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생리를 하지 못하도록 난소를 없애기 위해 다시 한 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여성의 몸을 가졌지만(물론 남자의 몸도) 선택권도 없이 남자로 살도록 강제된 것이다.


그는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때로는 남자로서 느끼고, 또 때로는 여자로서 느끼기도 했다. 그가 평생토록 외로웠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기본적 욕구는 오랫 동안 채워지지 않았다. 


마이클은 자신의 외형에 따라 남자로 살면서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아이를 너무 갖고 싶어했고, 시험관 시술을 받기 원했다. 마이클은 은행에서 큰 돈을 빌려서 시술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아내는 떠났고, 마이클은 빚을 떠안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사회가 요구 또는 기대하는 ‘남성상’에 부합해 보고자 했던 그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끝에 자신은 쓸쓸하고 외로운 중년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히다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 그 어디에도 편안하게 들어맞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그의 전신을 휩쓸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분노했다. 


자신을 ‘비정상’으로 처리하고 말도 안 되는 수술을 했던 의사들과 무지했던 부모, 성장기에 자신을 놀렸던 친구들과 주변의 사람들, 또 사회의 편견에 대해 그는 분노했다.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음에도 오히려 자신이 받은 수술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며 그것 때문에 또 다른 수술을 받아야 했던 자기 몸의 수난에 대해 마이클은 격분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뒤집어 씌운 굴레에 너무 쉽게 순응해 버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이라도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의 첫 번째 행동이 바로 출생신고서를 고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출생신고서의 성을 바꾸었다는 말을 듣고 우선 걱정이 되었다. 그가 겪게 될 세상의 풍파 때문이었다. 이미 나이가 오십 대 중반을 넘어선 데다가 외관이 영락없는 남자인 이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여자로 소개하면 어떤 시선과 대우를 받게 될까, 그것이 염려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 일과 관련하여 직장에서 조롱과 차별 대우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내게 '미쉘'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하던 그 날 바로 며칠 전에 이미 해고를 당했다고 했다. 회사측에서는 표면적으로 다른 이유로 포장했지만, 정황상 그의 커밍아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회사측과 싸워보려 하였으나, 그의 노력은 별 소득 없이 끝나 버렸고, 빚을 진 실업자, 그리고 남성의 모습을 가진 여자로 남았다.





혼란 속을 헤엄치다


우리는 모두 그를 위해 슬퍼했다. 그리고 '평생 한 번도 수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을 듣고, 우리는 함께 수영을 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엄두도 못 내는 그에게 후아니타 집에 있는 작은 수영장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민소매 티셔츠와 후아니타의 짧은 반바지를 입었고, 우리도 그와 비슷한 차림으로 수영장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 생소한(?) 느낌을 한참 동안 즐기던 그는 곧 어색한 그리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연신 귀 뒤로 쓸어 넘기며 그는 수영장 물 속을 계속해서 이리 저리 걸어 다녔다. 


하지만 슬프게도 얼마 후 그는 다시 한번 호르몬의 변화를 느꼈다. 이제는 자신을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느낀다고 했다. 많은 것을 희생하며 겨우 출생 신고서를 고쳐 놓았는데, 이제 다시 남자의 몸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자신의 뇌와 몸을 두고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운명의 장난 같은 호르몬의 변화로 무너져 내리는 그를 위해, 그저 힘들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도록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즈음 나는 석사 공부를 시작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시간을 보내다보니 벌써 육, 칠 개월이 지나 있던 어느 날, 오랜만에 찾은 마미의 와플 가게에서 나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여기 크라이스트처치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북섬으로 갔고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의 소식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게이와 바이섹슈얼’에 대한 소설책을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성적으로 ‘정상 범주’에 속하지 않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이해와 지지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런 따뜻한 울타리를 가지고 있던 소설 속 인물들도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을 겪는다. 책을 읽으며, 유독 나는 그가 생각났다. 마이클 혹은 미쉘의 외로움과 고통은 얼마나 지독한 것일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남성 혹은 여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불안정함과 고독을 넘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상의 편견을 넘어서서 끝까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그와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서 연대할 수 있기를, 그래서 그의 삶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표지 사진 : 'Bloomsbury Revisited (Bananas)' by Hernan Bas (https://artmap.com/peterkilchmann/exhibition/hernan-bas-2017)

Hida Viloria의 인터뷰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tKs2O3MSsOE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나의 대나무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