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도시락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배가 불러도 먹는 습관, 제대로 씹지 않고 입 안으로 넣다 보니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내 주변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만성위염, 식도염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어느 날, 음식을 즐길 수 없음에 우울함이 찾아왔다.
'일타 스캔들'에서 수학 인기강사로 나오는 최치열이 말한다.
신체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걸까? 먹어야 되고, 자야 되고, 싸야 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진화할 수 없나? 알약 하나만 먹어도 되는 기술은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너무 평범한 일상이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싸고, 졸리면 자야 하고, 일어나는 일상. 그 일상에서 음식은 섭취할 때마다 헛구역질하느라 편하게 못 먹고, 수면의 질도 떨어졌다. 공복시간이 길어진 상태에서 대충 먹은 빵이나 MSG가 들어간 음식, 위가 쉴 틈 없이 계속 먹는 간식들은 나의 위를 망치는 지름길로 가고 있었다. 제대로 차려진 음식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하루에 세끼를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 대학시절은 규칙적인 생활을 안 해서 배가 고프면 먹었고, 사회 초년생은 눈치 보느라 빨리 먹어야 돼서 대충 먹었고, 직장생활에 익숙해질 때엔 지쳐서 끼니를 먹는 것조차 귀찮아서 대충 먹었다. 대충대충.
나 자신에게 대접할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처럼 포장하고, 예쁘게 준 적이 스스로에게 없다. 내 몸에게 성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은 채 건강해지길 바랐던 것이다. 앞자리 수가 바뀌면서 나에게 하는 첫 번째 약속이었다.
푸석해진 머릿결, 탄력을 잃은 피부, 축 늘어진 건강상태로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식습관이었다.
변해야 된다. 변하자.
뜨거워진 여름을 시작으로 난 냄새가 안 나고, 덜 상하는 식재료를 도시락통에 넣어 다니기 시작했다. 판매되는 샐러드를 먹기도 하고, 끼니마다 단백질을 챙겨 먹기 힘들 땐 두유나 삶은 달걀로 대체했다.
누군가가 물어본다. 매일 똑같은 거 아니냐고, 기록할 필요가 있냐고...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샐러드가 아니기에 매일 다를 수밖에 없다. 시간을 투자해 고구마와 단호박을 삶아 소분해 두고, 단백질을 끼니마다 넣은 후 그 외 채소들은 계절마다 바꿔 넣는다. 반 년동안 이렇게 먹으니 체중이 9kg가 빠졌다. 체지방은 29%에서 15.3%까지 빠지고, 웨이트를 하면서 근육이 붙으며 활력이 생겼다.
나에게도 활력이 생길 수 있구나. 늘 가족, 친구, 주변사람들로부터 연체동물 취급을 받았었던 기억이 가물해진다. 세끼를 다 챙겨 먹었는데, 오히려 빠지다니 너무 신기할 뿐이다. 물론 주말인 토, 일요일엔 먹고 싶은 음식을 2끼 정도는 조금씩 먹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도시락을 싸다녔다.
늘 남에게 신경 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날들을 반성하며 스스로에게 먼저 잘하자고 다짐한다.
공부나 일을 하더라도 건강과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오래 하거나 즐길 수도 없고, 인간관계에서조차도 컨디션이 좋아야 상대방에게 더욱 친절해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