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8시부터 10시까지.
정진호 작가의 유려한 진행으로 깊이 있고 아늑하게 신작 그림책을 소개하는 ”그런 밤“에 영광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가
김동성 작가님의 [꽃에 미친 김 군]과 함께 선정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밤은 그림책 협회 주간으로 매월 둘째 주 수요일에 진행한다.
- 소개 그림책 및 작가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 김개미, 이수연 / 문학동네
『꽃에 미친 김 군』 / 김동성 / 보림
17년 전에 처음 그림책이 뭔지도 잘 모르고 공부하겠다고 이 책 저 책 사서 모으던 시간, 김동성 작가님은 가장 활발히 작업하시고 있는, 내가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그림을 그때부터 그리고 계셨다.
늘 한국의 정서를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따뜻하게 표현해 내시는 섬세한 동양화 기법과 그림책 입문자에게 교과서로 소개되는 연출법에 다시 한번 놀라면서 들었다. 기존에 삽화작업을 하셨던 책들에서 조금 더 모던하고 세련된, 무엇보다 '꽃'이 주된 소재였기에 아름다운 한 폭의 고급 화집을 감상하는 듯한 이 책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감탄이 흘러나왔다. 김동성 작가님께는 익숙하시고 오랫동안 그려오신 그림이기에 담담하게 소개하셨지만, 독자의 입장으로, 그리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꽃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서 꽃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화백 김덕형의 모습은 매혹 그 자체였다. 다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름이 낯설었다. 유실되어 남아있지 않다는 화집을 왜 한 장 보지도 못했으면서 이렇게 큰 아쉬움이 남는 것인지.
"김 군은 꽃을 주시한 채 하루 동일 눈 한 번 꿈쩍하지 않는다. 꽃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누운 채 꼼짝도 않고, 손님이 와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그런 김 군을 보고, 미친놈 아니면 멍청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자가 한둘이 아니다.(...) 김 군은 만물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있다. 김 군의 기예는 천고의 누구와 비교해도 훌륭하다.(...) 그는 '꽃의 역사'에 공헌한 공신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며, '향기의 나라'에서 제사를 올리는 위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제가 [백화보 ]
나른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들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우리는 하루에 얼마간의 시간이나 과연 '집중'하고 '감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김 군의 맹목적인 꽃에 대한 사랑이 미련스럽기보다는 존경심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김동성 작가님이 그려낸 꽃이 보여주는 살아있는 듯한 깊은 아름다움 때문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나에게는 대선배님이시고 오래전부터 전설 같은 화가이시기에 늘 먼 존재로만 느껴졌었는데, 어제 나를 알고 계신다고 내 그림과 연출에 대해 언급하셔서 정말 너무너무너무 놀랐고 황송해서 대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줌이라서 여러분이 함께 듣고 계시기에 개인적인 감회를 말하기도 조심스러웠고, 그때부터 긴장이 돼서 손이 차가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의 이야기를 시작 헸다.
김개미 시인님과는 두 번째 북토크이다. 시의 언어를 언어들을 모아서 굴리는 '공'에 비유하셨고 그림책의 언어를 '길'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참 이해가 잘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그림책 원화가 다 완성되었을 때 그림원화들을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집 거실에 펼쳐두고 편집자님과 함께 독자의 마음으로 그 흐름을 같이 가늠해 보았던 일이 생각이 났다. 제한된 짧은 페이지 안에서 감정의 흐름을 의도하고 읽어내고 터뜨리고 잡아내는 것, 사실 이렇게 글로 한 줄 써버리면 참 간단하게 들리지만 '의도대로'되는 것은 시간도 무척 오래 걸리지만, 꼭 의도된 대로 읽히지도 않으며, 그림책 제작 과정 자체가 공동의 작업이기에 많은 변수들이 작동된다. 2년 정도를 이 책을 다듬으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이수연이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이전에도 삽화작업을 해봤었지만, 이런 밀도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서로의 의견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적용했던 기억은 무척 귀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의 원화액자들은 지금 서울에서 속초, 안양, 대전으로 계속 여행을 다니고 있다. 이렇게 책방 전시들이 릴레이처럼 이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중간에서 운송해 주시고, 참여해 주신 출판사와 책방지기님들께 참 감사하다.
이수연(그림작가)의 말
텃새는 철을 따라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 곳에서 산다.
그러나 생의 터전으로 예상하지 못한 파도가 들이친다.
꺾여 버린 날개로 끝이 없는 바다 위를 나는 새들.
그 소리가 오래, 멀리 울려 이곳까지 닿기를 바란다.
책에 맨 뒷장에 들어가는 작가에 말에 이 글을 적었었다.
사실, 그림책 한 권이 나온다고 아주 큰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사서 보고 즐기는 이들도 시장자체가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미련한 짓을 몇 년의 시간을 들여서 다듬고 또 다듬으며 무언가를 결국은 만들어 낸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세상의 전쟁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일상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라는 기도를 반복한다. 그저 말로 꺼내고 귀로 들어가는 작은 의식일 뿐이었다. 그러다 이 시가 나에게 찾아와 주었다.
그림책도 그렇다. 그저 글 몇 줄, 그림 몇 장이 모인 것뿐이다. 그게 엮여서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고, 만질 수 있는 무언가가 되고, 조금씩 천천히 물처럼 바다처럼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게 어디까지 갈지는 나는 아직 전혀 기대하지도 예상하지 못하지만, 이런 희망을 품은 작은 움직임들이 마음에 가닿아 어떤 마음들을 움직이는 큰 파도가 되리라 그렇게 주문을 외워본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그리고 하는 모든 말들을 조심조심 가다듬으며 희망하는 오늘이 되기를.
그런 바람을 가지고 어제의 저녁시간을 기록해 본다.
세심한 리써치와 매끄러운 진행으로 멋지게 세 작가를 소개해 주신 정진호 작가님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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