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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Jul 31. 2023

귀신보다 바퀴벌레가 더 싫은 사람.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나다. 아홉살 부터 11년을 살았던 우리집은 영등포 도림동에 흔하게 보이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었고, 그 주택에는 유난히 바퀴벌레가 많았다. 어느곳에나 바퀴벌레가 있었다. 신발을 신어도 발과 다리를 타고 엄지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튀어 나왔고, 냉장고 옆 빈벽에 기대서 앉아있으면 내 머리위로 사사삭 거리는 긴급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장농 밑에 머리카락이 있는줄 알고 치우려서 손을 뻗으면 바퀴벌레의 더듬이 였던 그곳의 기억은 꽤나 오래 가는 강렬한 기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체질적으로 건강한 편이고 보통의 여자들에 비해, 그다지 예민한 성격도 아닌편이다. 20대의 나는 캄보디아에 갔을때, 난생 처음 보는 내 팔뚝 굵기의 대왕뱀을 내목에 칭칭 둘러도 정말이지 아무렇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미지근한 체온의 뱀의 피부를 쓰다듬으며 그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 보았을때, 생각보다 귀여워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뱀이나 조류, 환공포증은 운좋게 벗어난 나였지만,  10년 넘게 내가 살았던 집에서, 어느곳에서나 튀어나오던 대왕 바퀴벌레들에 대한 기억은 곤충에 대한 강한 공포증을 나에게 남겼다. 지금도 나는 작은 바퀴벌레가 튀어나와도 전혀 견디지 못한다. 


하늘이가 일곱살이 되자 하늘이는 사슴벌레와 특히 장수풍뎅이의 열렬한 팬이 되어 버렸다. 하늘이는 새벽에 잠이 일찍 깬 시간에는 Why책 시리즈중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편을 어스름한 빛속에서 혼자서 읽기 시작했다. 집에 예전에 사둔 곤충 백과사전을 찾아서 자신이 관심있는 딱정벌레 편을 반복해서 넘겨보았다. 한 개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 에벌래는 어떤 색인지, 생존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하늘이는 점점 곤충박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아빠와 외출한 한달 전, 곤충 박물관에 가서 저 기데온 장수풍뎅이 '사체'를 집으로 데려왔다. (나는 저것을 표본이라 부르는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백설공주의 유리관 같이 예쁜 투명한 네모상자에 저것을 담아서 소중하게 데려왔고, 2주간의 건조기간을 거쳐 드디어 뚜껑을 제대로 닫고 지금 집에 제일 잘보이는 책장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처음 저 아크릴 상자를 보고 느낀 감정은 약간의 혐오감과 앞으로 내가 저것을 매일 보며 느낄 감정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무리 봐도 나에게는 바퀴벌레 닮은 그 무엇이기만 한 저것은, 반짝 반짝 윤을 내며 빛을 내고 있었다. 나 빼고는 하늘이도 바다도 아빠도 모두가 괜찮았기에 나는 하늘이가 진짜 장수풑풍뎅이를 키우고 싶다는 욕망을 저 사체를 대체품으로 누르길 바라며 꾹 참아야 했다. 하늘이는 변함없이 시큰둥한 나를 붙잡고 장수풍뎅이가 자신의 몸무게의 100배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다고, 반짝 거리는 껍질의 색이 붉은색을 띄는게 그게 얼마나 근사한지, 열심히 저 곤충의 멋짐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주말, 하늘이와 바다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한마리씩 데리고 집으로 왔다.  투명한 곤충 체집장안의 두 마리는 각각 투명한 곤충젤리 근처에 자리했고 톱밥이 포근하게 깔려져 있었다. 민호는 곤충을 사기전 마지막으로 내가 허락을 드디어 할것인지 말것인지 확인 전화를 했었다. 선택권이 없었다. 거기서 마저 못사게 한다면, 지난 몇달간 꾸준히 졸라왔던 하늘이는 견디지 못할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깨어난 나는 자리한 나무 장난감과 먹이통에 곤충들이 다칠까봐 조심조심 움직이며  천천히 그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자세히 가까이 천천히 보이는 이 곤충은 분명 어딘가 조금은 신기한 점이 있었다. 곤충 젤리를 천천히 빨아먹는 모습을 보았을때는 귀엽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던것 같다. 한 녀석은 톱밥으로 숨어들기를 좋아했고, 한 녀석은 먹이를 꼭 안고서 지키는 적극적인 녀석이었다. 각자의 외모를 관찰하고 캐릭터를 부여하며 나는 이 낮선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몇달은 걸렸지만, 하늘이는 의도한 것도 아닐텐데 서서히 곤충의 매력에 대해, 그 독특한 강함과 전능함!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해서 이야기 한다. (조금의 과장없이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그 몇달이 십대때부터 내 안에 단단하게 잠재되어있던 깊은 곤충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어떻게 한것인지, 조금 움찔하며 움직이게 만들었던 것일까? 도대체 내 눈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인가.


 하늘이 바다에게 읽어주기 위해서, 절대로 들춰보지 않았던 15년전에 샀던 취향에 맞지 않는 일러스트가 들어간 그림책을 들춰보았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닳았다. 내가 그림체 때문에 놓치고 있었던, 한번도 펼쳐보지 않았던 그 그림책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시야가 좁은지, 얼마나 많은 것을 그동안 무심하게 놓치고 있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나는 한번 더 나의 유년시절을 살고 있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어쩌면 살고 싶었던 시간을 한번 더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로 인한 작은 변화들이 나에게 나쁘지 않은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진짜 바선생이 집에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이 안된다. 두렵다..)


하늘이는 오늘도 무심한듯 집요하게, 나에게 장수풍뎅이의 강함과 그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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