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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 Feb 02. 2023

고토열도 일주기 - 일본의 기독교 성지 답사기 (16)

오지카시마 (小値賀島)

안내소는 흔히 보이는 ‘관광안내소’라 씌여있지 않고 ‘NPO법인 오지카 아이란도 츠리즈므 (Island tourism)’ 라 씌여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오지카小値賀 페리터미널에 도착하니 항구는 이미 폐쇄된 상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가는 여객선편이 많지 않은데 그 여객선마저 태풍으로 입출항이 정지된 것입니다. 오지카시마에 온 목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2개 구성 자산중 하나인 노쿠비교회野首敎會를 방문하기 위함입니다. 노쿠비교회가 있는 섬 노자키시마野崎島는 무인도로 오지카시마 바로 옆에 있습니다. 오지카항에서 매일 오전, 오후 하루 두차례 운항하고 편도 30분이 소요됩니다. 만에 하나 오지카시마로 돌아오는 배를 타지 못할 경우 전문 숙박 시설은 아니지만 예전 학교 강당을 개조한 시설에 머물 수 있는데 이 경우도 예약이 필요합니다. 시설의 관리인은 상주합니다. 

여행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예약도 진행해 주는 관광안내소입니다. ‘관광안내소’라 씌여있지 않고 ‘NPO법인 오지카 아이란도 츠리즈므 (Island tourism)’ 라 씌여있습니다


노자키시마를 방문하는 이유가 대부분 노쿠비교회와 잠복 키리시탄 마을이었던 노자키마을野崎集落터를 보기 위함인데 노자키시마를 방문하는 유일한 교통편이 오지카항에서 왕복하는 소형 여객선입니다. 

노자키시마는 예전에 마을과 학교까지 있었던 유인도였지만 인구의 자연 감소와 외부 유출로 이제는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이 낙도에 노쿠비교회가 세워진 것은 노자키시마 주민 대부분이 잠복 키리시탄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박해로 많은 키리시탄은 고향을 떠나 타지로 피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키리시탄을 신고하면 포상금까지 주어질 정도로 신앙 유지가 힘들었습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내지의 깊은 곳이나 낙도를 택했습니다. 노자키시마를 포함한 고토열도 일대의 섬도 그 피신처가 되었습니다. 이 섬에서 그들만의 신앙을 유지하며 마을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당연히 예배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노쿠비교회입니다. 

왼쪽이 오지카시마小値賀島, 오른쪽이 노자키시마野崎島.  고토열도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노자카시마의 아래 빨간 네모칸은 노쿠비교회野首敎會입니다.


교회와 마을은 일본의 독자적인 기독교 문화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터미널에 있는 안내소는 다행히 열려 있어 다음날 노자키시마행 페리의 운항 여부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태풍으로 오늘편은 취소되었는데 일기예보에 따르면 내일도 비와 바람이 심해 운항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 다. 큰 기대를 품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오지카시마까지 왔는데 노쿠비교회를 목전에 두고 갈 수가 없다니… 나루시마의 에가미천주당도 악천후로 눈앞에서 포기했는데 오지카시마까지 힘들게 와서 노쿠비교회를 포기하게 되니 맥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천재지변으로 인한 것이니 누굴 탓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다음날도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하고 오히려 오지카시마를 빨리 떠나 다음 목적지 사세보佐世保로 이동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노자키시마행 여객선의 운항 여부는 다음날 아침 마을 스피커로 공지한다고 합니다. 

페리터미널에서 가까운 곳이 섬의 중심지입니다. 과거 상점가였지만 지금은 상점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상당수가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인적도 없지만 거리는 놀랄만큼 깨끗합니다.
인구 유출이 계속되고 있어 오지카시마도 언젠가 노자키시마와 같이 무인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태풍이 잦아들어 출항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오전에 신카미고토 관광안내소의 스즈키씨를 통해 예약한 민숙으로 향했습니다. 섬은 적막하지만 오가는 사람도 간혹 보입니다. 도시의 도심이 기차역을 중심으로 번화하듯 섬은 페리터미널을 중심으로 주요 시설들이 위치합니다. 관공서나 상점, 식당 등의 편의시설은 페리터미널 근처에 위치하지만 인구도 얼마되지 않은 작은 섬의 불과 몇 개뿐인 상점인지라 상점가라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민숙 역시 터미널 인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약할 때 민숙 이름과 전화 번호, 사진만 있어 민숙의 상태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대동소이하고 거의 같은 수준이니 어느 집으로 예약하든 차이는 없을거라는 스즈키씨의 얘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충 정해 예약했었습니다. 작은 골목에 자리잡은 민숙을 어렵지 않게 찾아 체크인을 하고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인적이 드물고 비바람까지 많이 불어 섬마을 전체가 을씨년스럽기까지 보였습니다.

페리터미널 근처에 있는 마을의 골목 풍경. 어업과 밭농사가 주업인 작은 낙도지만 쇠락은 막을 길이 없어 보입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마을 스피커는 부지런히 선박 운항 상태를 알려 주었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태풍으로 인한 결항’이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 옵니다. 혹시나 하는 노자키시마행 페리에 대한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노자키시마 답사는 포기해야 할 판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민숙 근처에 있는 터미널을 산책을 겸해 들려 보았습니다. 오전 입출항 페리는 전부 결항 확정이고 오후는 물론 다음날 노자키시마행도 불투명하다고 합니다. 꼼짝없이 오지카시마에 발이 묶여 버렸습니다. 

이제는 노자키시마를 과감히 포기하고 사세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사세보에서 오지카시마로 오는 여객선이 출발해야 그 배를 타고 사세보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사세보에서의 여객선 출항 여부에 신경이 곤두 섰습니다. 사세보항 시간표에는 오지카시마행 여객선 출발 시간이 오후 1시로 되어있어 점심때나 되어야 사세보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젊은이 서너명이 근주중이었는데, 젊은이가 이 작은 섬에 살기엔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민숙으로 돌아와 사세보로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짐을 챙기고 마을 스피커를 통한 반가운 소식을 기대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질 때 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사세보에서 여객선이 출발한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아, 오늘은 사세보로 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세보에서 오지카시마까지는 3시간30분이 소요되니 오후 늦더라도 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짐을 다시 챙기고 터미널로 가 여객선을 기다렸습니다. 아직 바람이 세차고 비도 많이 내리고 있지만 출항했다니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출항을 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귀한 여행 시간 하루 이상을 그냥 보낼 뻔했습니다. 


페리터미널에 여유있게 도착하여 기다렸습니다. 웬 젊은 백인 여성이 관광안내소에 앉아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곳 관광안내소 이름은 ‘아일랜드 투어리즘’ 입니다. 외국인 여성 직원은 아마 JET 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JET는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해외 인력 고용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소도시나 오지 등 작은 행정구역에 외국인 인력을 파견하여 지자체 업무를 수행하는 한시적 공무원 채용 제도입니다. 일본 근무나 체재를 희망하는 외국인과, 외국 인력을 필요로 하는 지자체 모두 윈윈하는 프로그램으로 1년에 1회 선발하며, 파견을 희망하는 외국 젊은이들이 많아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얘기는 들은 바 있습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의 인력을 선호하지만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우리나라 인력도 많이 채용한다고 합니다. 아마 이 낙도에서 근무하는 외국 여성도 필경 그런 인력이리라…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자니 기다리던 대형 여객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필자를 태우고 사세보로 갈 여객선입니다. 몸을 싣고 여객선이 출발하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오지카시마와 사세보를 연결하는 여객선. 태풍으로 오지카항 착발 모든 여객선이 결항되었는데 다행이 정오를 기점으로 일기가 나아져 이 여객선이 사세보에서 오지카시마로 출항했습니다.
오지카시마에서 이 배를 타고 사세보로 왔습니다. 선내 객실은 통마루 형태인데 카펫이 깔려 있고 담요와 베개가 깔끔히 정돈된 상태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오지카시마에서 출발해 사세보로 향하는 여객선 선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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