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 달렸다.
벌렁거리는 마음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 펜을 들고 글을 읽어 내려가며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변함없이 향기를 내뿜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는 나의 이러한 마음 따윈 관심 없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앉던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후회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 들었던 것일까 그에게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임용을 준비해야 하는 나의 의무를 모두 제쳐두고 사랑에 뛰어둘 수는 없기에 기준선을 정했다. '이젠 옆에서 몰래 힐끔거리는 것 따위는 하지 않겠어, 그가 나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겠어, 드디어 정신 나갔구나' 생각했지만 되면 좋은 거 아님 말고라는 무모한 생각으로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의 존재만을 인식시키고 싶었고 그 이상은 하늘에 맡긴다는 괴상한 이론과 함께 작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과하지 않게 꾸몄다.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옷은 단정하게 입었다. 약간의 향수도 뿌렸다. 그리고 가장 하이라이트는 절대 나는 너에게 관심 없다는 뉘앙스의 분위기를 풍기기로 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하며 자리에 앉아 공부에 매진했다. 신기하게 공부는 더 잘 됐다. 공부에 몰입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볼 꺼라는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오히려 집중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그가 쉬는 시간에 그의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눈에 띄게 서성였다. 이 정신 나간 상황을 같이 공부하는 친구한테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혼자서 미쳤네 미쳤네 하면서 어이가 없었지만, 그것만의 만족이 있었기에 그저 흐름에 맡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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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저녁 12시, 귀가하려고 내려가는 계단에서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