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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빛날희 Feb 26. 2022

유치원 교사 1년 후기

우선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오미크론 확진자가 되어 강제로 방에 갇혀 시간을 보내야 되는 의도치 않은 학기말 방학이 생겼기에 이제나마 지난 1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보려고 한다.


2월, 교사로 채용되었다는 전화와 함께 드디어 경제력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마음껏 상상하며 세련되면서 일 잘할 것 같은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장바구니에 하나씩 모아두었다. 그러면서 한껏 부푼 마음으로 2월 학기말 준비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떠남으로 인해 학기말 준비는커녕, 유치원에서 뭘 해야 될지도 제대로 모른 체 무작장 6살 반을 맡게 되었다.


 3월,  유아들의 입학과 함께 나도 입사하면서 쏟아지는 할 일이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웠다. 24명의 유아들과 생활하면서 일일이 챙겨야 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유치원에서 지켜야 하는 유치원 만의 규칙, 규율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뭐 하나 익힌다 할 때쯤 새로운 요구가 나오고  또 나오고, "선생님"하면서 어깨를 칠 때면 심장이 배로 뛰기 시작하였다. 또한 유치원 내에서의 융통성 없는 업무 처리 방식과 위계질서를 강조하며 내로남불을 보여주는 교사 분위기가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져 인생의 우울감을 느꼈다. 또 간간히 들려주는 기존 선생님들의 '다른 선생님들의 주의 사항'을 듣고 있자니 '왜 이곳은 서로 눈치 보면서 아웅다웅하고 있는 걸까? 왜 앞에서와 뒤에서 하는 모습이 다른 걸까? 왜 이렇게 남한테 관심이 많은 걸까? 왜 일 안 하고 인스타 보다가 퇴근시간이 다 돼서야 일하는 걸까?'와 같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도, 말하고 싶지도 않은 이 불평불만이 쌓이고 쌓여 결국 탈모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다 이런 걸로 그만두거나 한탄하기는 내 시간이 아깝다는 것도 8월 여름 방학이라는 여유를 보내고 와서 좀 단단해졌다. 

 

 휴가, 연속적으로 쉼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중요한 나의 숨통인 것 같다. 거지 같았던 유치원 적응기를 여름 방학이라는 이 글자로 버텼다.' 방학이 며칠 안 남았어, 조금만 더 , 조금만 더' 하면서 버티고 보니 신기하게 여름방학이 눈앞에 찾아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눈곱만큼도 유치원은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놀았다.  그러나 아직 휴가가 며칠 남았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곧 출근한다는 생각으로 심장이 뛰었다. 아직도 유치원에 출근하는 게 두려웠다.  

 

 2학기 시작, 여느 때와 다름없다.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지만 신입 선생님의 실수는 아주 명확하게 집고 넘어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그 잘못의 유무를 따지는 선생님들, 자신이 일이 끝났음에도 여유 있게 일하느라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선생님을 다 같이 기다려야 하는 분위기, 같이 해야 하는 당직업무임에도 쏙 빠져서는 다 해주기를 바라는 경력 선생님의 속내 속에서 유치원에 애정을 갖는 것은 억지스러웠다. 그러나 유치원에서의 일 처리가 미숙하기에 다른 사람의 눈치, 비난을 참으면서도 배워야만 했다. 그렇게 눈치를 배우고, 어느 정도 흐름을 파악하고 나니 이 빌어먹을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덜 피곤하게 만드는 룰이 생겼다. 첫째, 유치원에서의 불만은 어느 누구의 선생님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말하면서 그 순간의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으나, 이 비밀은 절대 지켜지지 않으며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빌미만 될 뿐이다. 둘째, 엄청난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가 아닌 실수에는 크게 동요하여 굽신거리지 않아도 된다. 일 처리를 하다 보면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당직 때 꺼야 되는 불을 못 끄거나, 교구 정리를 딴 곳에 하는 것과 같은 약간의 실수에도 몸 조아리면서 까지 죄송함을 표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보면 경력 있는 선생님들도 이런 실수를 아주 잘하기 때문이다. 셋째, 강자한테는 좀 강하게 갈 필요가 있다. 카리스마 있고 리더십이 있는 강한 자가 있다면 약자를 무시하는 강자도 있다. 이런 강자에게는 약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약점이 될 수 있다. 싸울 정도는 아니지만 예의 있게 나름의 의사표현만 제대로 해도 약자를 힘들게 하는 강자는 쉽게 건들지 않는다. 넷째, 내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면 가십을 믿을 필요가 없다. 3월에 기존의 선생님이 주의사항으로 어떤 선생님의 질을 평가하며 조심하라고 강조하였지만 그 말과 달리 나는 1년 동안 그 선생님과 잘 지내왔다. 그저 가십은 가십으로만 생각하기를  마지막, 힘든 시기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영원히 행복하지 않을 것만 같은 힘든 시기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진다는 믿음이 생긴다. 일의 업무가 끝없이 이어지며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곧 끝났다. 고통에는 항상 데드라인이 존재한다. 1년 속에서 나의 색깔은 점점 진해졌다.  묽기 가득했던 팔레트가 점점 색을 더하더니 점차 본 색을 내뿜고 있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고 있을 때 두려움은 사라진다. 


수료식 끝나자마자 매일 야근해야 된다는 새 학기 준비를 하기 싫어서 '학기 말 방학 누리게 해 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는데 의도치 않은 오미크론 확진으로  소원이 이뤄지면서 다른 선생님들 모두 출근해서 새 학기 준비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방에 앉아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하고 싫지만, 덕분에 일하는 삶의 중요성도 더불어 깨닫고 있다.  다시 출근하면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 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유효기간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으나, 뭐 어째 꺼나 아무튼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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