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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콜라 Dec 23. 2021

모르는 고양이를 생각하며

혼자


'혼자'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있지 아니하고
그 사람 한 명만 있는 상태



일어나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간단히 밥을 먹은 뒤 각종 영양제와 홍삼을 챙겨 먹는다. 그다지 읽고 싶지는 않지만 교양을 기르려고 신문을 펼쳐 읽고 잠시 멍을 때리다가 커피 한 잔을 준비한다. 드르륵드르륵 시끄러운 커피머신 소리를 들으며 오늘 할 일을 잠시 떠올린다.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핸드폰으로 BGM을 골라 튼다.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졸리지도 않은 재즈가 요즘 날씨에는 딱 맞는다.


혼자 일하는 아침은 대체로 이렇다. 홀로 작업 환경을 돌보고 일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로지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배경음악도 온도도 조명 밝기도 내 마음대로다. 회사에 다니던 때와는 다르게 인사해야 할 상사도 들어가야 할 회의도 없다. 필요한 건 일을 시작할 의욕과 의지뿐이다.



8년을 다닌 첫 회사는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편도 두 시간 거리였다. 그때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지옥철을 견디는 것 또한 내 일의 일부 같았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집 안에 나만의 작업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작은 접이식 책상으로 버티다가 얼마 전 결국 튼튼한 책상과 비싼 의자를 장만했다. 목과 허리 건강을 위해서 나름 큰돈을 들인 것이다. 혼자 일하는 사람은 건강도 알아서 잘 챙겨야 한다.


갑자기 메일이 하나 왔다. 일주일 뒤까지 외서 검토서를 하나 써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다. 이럴 때면 어쩔 수 없이 고민에 빠진다. 돈과 기회를 생각해 받아들일 것이냐, 무리하지 않으려고 거절하거나 기한을 늘릴 것이냐. 보고할 상사도 의논할 동료도 없으니 어떤 결정이든 스스로 내려야 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상사가 대부분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사사건건 지시를 받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혼자 일하게 되니 나 혼자 뭐든 정해야 한다는 것이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잘해도 내 탓, 못해도 내 탓이니까.


그래도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새내기 번역가로서는 혼자 하는 일의 어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아직 더 크다. 아직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바람은 스케줄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할 만큼 번역거리를 잔뜩 받는 것. 회사에서 도시락 시켜 먹으며 야근하던 날들처럼 내 이름을 건 번역서에 밤늦도록 몰두해 보고 싶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하고 기대해 본다. 긍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부른다고 했다.


아, 하나 더 작은 바람이 있다. 집에서 혼자 일하다 보면 가끔 옆구리가 시리다. 옆을 따뜻하게 데워줄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면 완벽한 작업 공간이 될 것 같다. 그러려면 한 마리 묘생을 안락하게 책임지기 위해 돈을 충분히 벌어야겠지만……. 언젠가 내 옆자리에서 따끈따끈 식빵을 굽고 있을 고양이 한 마리를 떠올리며 오늘도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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