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유현 Jul 06. 2023

정신승리와 르상티망

달고 맛있어 보여 포도를 따러 나무 밑에 왔지만

도저히 닿지 않아 아무리 먹을래도 딸 수 없는 포도를 보며

여우는 '저 포도는 신 포도라 먹어도 맛이 없다.'라고 한다. 


사실은 저 포도가 너무 먹고 싶은 여우가 

저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방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포도를 형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단기간의 자존심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방어적인 자의식으로 인해 새로운 정보에 담을 쌓게 하여 

자신만의 세계에 갇힐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이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들의 행복의 근원은 르상티망이다. 

돈 많은 회장님의 불편한 가정사를 예로 들며 

'돈이 많으면 뭐 하니. 저것은 행복이 아니다.' 

'우리가 더 행복하지 않니.'


친구가 고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호텔보다 내가 결혼한 데가 더 음식도 맛있고 좋은 것 같아.'

그 말에 그 애 엄마는 

'맞다. 나는 니 결혼식장이 아주 훌륭하더라.'

맞장구를 쳐 준다. 

웨딩홀의 결혼식도 아름답지만 객관적으로는 호텔 결혼식의 웅장함이 조금은 멋질 수도 있는데.

호텔에서 결혼하는 친구를 보고 와서 좋은 이야기 한마디 해 줄 수 없는 그 마음. 

얼마나 비루한가. 

그러나 그들은 만족하고 행복했다. 


정신승리를 하는 이 대화가 불편한 것은 나뿐인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는 안분지족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나만 삐뚤어진 건가 생각했다. 


불안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패배주의적 분노, 그것이 바로 르상티망이다. 


정신승리를 통해 현대사회의 힘든 순간을 극복하는 것은 건강에 이로울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엄청나게 성장한 한 때 내 옆에 나란히 서있었던 친구를 보며

그 위치에 가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걱정하는 마음은 어떻게 보면 의좋은 친구인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힘들다고 하지 않지만. 


사실은 한 꺼풀만 들춰보면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 친구의 성공이 왜 나보다 크고 빠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왜 충분한 성공이 아닌지를 굳이 찔러내면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자기의 위치에서 안정을 찾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의 지인들의 성장은 내게도 기쁜 일이지만 

내가 너무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나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가끔은 누군가가 가진 명품가방을 내가 가질 수 없기에 

내가 살 수 있는 수준의 무언가를 소비하며 '난 이거면 충분해.'라고 위로를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내가 갖지 못한 그것(명품가방)보다 내가 가진 이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가치라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강한 타인을 배척하려고만 들면 

나의 세계가 높은 성벽을 쌓아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나의 방어기제 일지 모르겠지만 르상티망에 대해 읽으며 

마음 한편에 쌓여있던 의문이 녹아내려 개운한 아침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이사 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