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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Apr 25. 2023

영어와 수학

 공손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 어학원입니다. 

  0우식 학생이 **에서 실시한 단어시험에 fail 하였습니다. 

  다음 주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재시험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


 처음엔 너무 깍듯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내용이라 난독증처럼 메시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 단어시험 못 봤다고'


암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미물. 노력을 하지만 아직은 손톱만 한 노력으로 천지를 얻으려 하는 나의 작은 인간.


이러한 종류의 메시지를 전달받고 나면

 '아이가 머리가 나쁜가? '라는 생각보다는

 '좀 열심히 좀 하지. 아직 덜 여물어서 그런가. 그래 아직 어리지.' 

하고는 그냥 다음 시험은 내가 준비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영어는 어쨌든 노출과 관련된 문제이다. 책에 많이 노출을 해주고, 오디오북에 많이 노출을 해주면 재미를 붙이는 사이 언어를 습득할 수도 있는 그런 영역이다. 물론 꼭 암기해야 하는 것들은 있지만. 


하지만 수학은 다르다. 


수학시험은 일단 fail은 없다. 단 한 번 치른 시험에서 받은 점수가 전부다. 

재시험 같은 걸로 메이크업할 기회가 없는 게 당연하다. 

문자 역시 아주 심플하다. 

'0우식 학생이 4월 단원평가에서 00점을 맞았습니다. '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별로인 점수를 받아 올 때

어쩐지 인생에 어둠이 드리운 느낌이랄까? 


노오력을 해도 이게 될까?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할 수 없는 과목. 

'아직 덜 여물어서?'라는 질문도 수학에는 통하지 않는다. 

수학머리가 트이는 시기가 있지. 분명 있어. 

하지만 수학은 가끔 영원히 트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트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 스펠링을 틀리는 건 노오력하면 되지만 

수학에서 오답을 내는 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파악하기 어렵다.

아무리 수학문제를 보여주고 풀려봐야 오답은 오답이다. 

마냥 노출을 해준다고 해도 깨달음을 얻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많은 부분이 작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작은 인간이 충분히 마음을 열었는지, 이것을 이해해 볼 마음이 있는지, 

틀리면 맞추고 싶은지, 틀리면 그만하고 싶은지도 굉장히 중요하다.  



최근에 받은 수학학원 상담에서는 그 학원에서 제안하는 특정과정을 꾸준히 수행한 경우 

중학교 내신 시험에서 70% 이하로 성적을 받는 경우는 없다고 자부하셨다. 

(70점 맞는 게 어려운 일인가 할 수도 있지만 학교에 따라 수학내신 시험의 난이도가 상당한 경우도 많다.)

혹여나 그렇게 되는 경우 공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내 아이가 70점 밑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장님의 말씀은 되려 속이 후련했다. 

맞아, 수학은 그런 거다. 애매하게 질질 끌고 간다고 해도 억지로 꼭대기에 절대 갖다 둘 수 없는 영역. 


때론 멀리서 보면 명확한 것들이 가까이서 볼 수록 미궁인 경우가 있다. 

자식의 학습과 관련된 결정이 대부분 그렇다. 

남의 자식 일은 잘도 보이는데 

내 자식 일은 무엇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희일비하며 들른 서점에서 매번 한 권씩 들고 나오는 문제집. 

'한 장 풀리기가 어려운 그 문제집 내가 다 풀고 말지' 하는 결론에 도달할걸 뻔히 알면서도 

구석구석 문제집을 비교하며 다시 또 내 마음만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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