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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현 May 04. 2023

안녕? MZ야. 나는 알파를 키우는 아줌마야

 줌(Zoom)으로 딱 한번 만나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눴다. 

 다들 예쁘고 참한 20대의 모습이다. 화장기 없지만 맑은 얼굴들을 보며 우리가 이렇게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함께 하게 되어 좋다고 어색한 대화를 나누었다. 


 개를 좋아하는 나는 개를 구조하는 단체에서 온라인상의 서포터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되었다. 시간도 자유롭지 않고 멀리 이동을 하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온라인상의 일이라 딱 내 일 같았다. 


 줌에서 만난 다른 분들도 역시 나와 비슷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한 분들이었다.

 한참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나이(요즘은 이걸 현생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현생이 바쁘지만 좋은 마음 하나로 시간을 내서 밤 11시에 비대면으로 한 번의 미팅을 했다. 대학교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바쁜 친구 하나, 직장을 다니며 이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친구 하나, 그리고 아줌마 나 하나. 


 '내가 이렇게 젊은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다니. ' 감동과 동시에 내가 한 물 갔구나 싶은 현타도 왔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MZ였다. '안녕? MZ야. 나는 알파를 키우는 아줌마야.' 괜히 설레었다. 


 20대는 참 바쁜 시기이다. 학교를 다니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매일 일어나고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목적이 있다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것이 20대의 삶이었다. 어떤 날은 밤늦게까지 놀기도 하지만 다른 며칠은 야근으로 정신이 쏙 빠지는 그런 시기. 고되고 힘들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그 둘을 보니 참 빛나더라.


 우리는 FLOW라는 앱을 통해 프로젝트에 소속되었고 그 앱을 열고 들어가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업무들이 피드로 죽죽 올라왔다. 

 일의 진행 방식은 지극히 자발적이었는데 새로운 피드(새로운 업무)가 생성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담당자에 자신의 이름을 체크하고 시작일과 마감일을 입력해서 모두에게 공유되도록 한다. 그리고 계획한 그 시한 안에 일을 마무리 지으면 된다. 

 피드백이 필요한 경우, 피드 안에 피드백이라는 버튼을 선택해서 피드백을 주길 바라는 사람을 @골뱅이로 불러 '한번 보고 수정할 점 알려주세요~' 하면 가서 일을 검토하고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면 된다. 


 일단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새로운 업무가 생성되었을 때 40대 아줌마 나는,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간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20대 나의 동료들은 본인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기보다는 시간적으로 가능하면 담당자에 이름을 거침없이 넣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으면 어린 친구들이 일을 하나씩 가져가는 형상이 되었다.

한순간에 프리 라이더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게 아닌데, 내가 이 일을 잘 못할까 봐 움츠려든 것뿐인데 이 일을 안 하고 싶은 것이 아닌데. 


 몇 개의 업무가 빠른 속도로 주인을 찾아갔다. 

 더 이상 프리 라이더의 인상을 심어줄 수는 없어. 새 업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가 업무의 내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당장 내 이름을 넣어버렸다. 

 시작일과 마감일도 아주 타이트하게 잡아서 모두에게 내가 짧은 시간 안에 이 일을 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써 보지 않던 홈페이지 관리 프로그램도 봐야 하고 구글웍스에 올라간 자료들도 찾아봐야 하고 사진의 크기와 화질도 규격대로 맞춰야 하는 일들은 손에 익기까지 정말 불편했다. 몇 번의 고비가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채팅창에 도움을 요청하고는 했는데 우리의 젊은 두 친구들은 정말 머뭇거림 없이 이런저런 조언을 주기도 하고 일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짐스러운 아줌마가 되어가는 건 싫은데...' 


 덕분에 나의 첫 업무는 무사히 마쳤고 한 번이 어렵지 그 이후로는 20대 친구들 놀러 가는 시간도 주고 싶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자신감이 생겨 업무를 이렇게 저렇게 챙겨서 했다. 물론 나의 손이 느리고 알림에 대한 반응이 느려 MZ 친구들 역시 많은 일을 해결했다. 


 가끔은 정말 영역 밖의 일들도 발생했는데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전문가들이 상주하고 있지 않아서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이 머리를 맞대어하기도 했다. 특히 게시글을 작성하는 양식인 html에 관한 것들은 정말 자신이 없는 부분이라 채팅창에 금방 '제가 잘 모르는 거라'라고 입력해버리기도 했는데 한 친구는 구글을 뒤지고 각종 자료를 뒤져서 끝끝내 그 일을 해내곤 했다.(여전히 그녀는 모든 일을 그렇게 해결하고야 만다.) 그녀를 통해 나도 해본 적 없는 홈페이지 수정 작업을 하나 도전하여 성공을 하는 경험도 얻었다. 


 어느새 불평부터 터뜨리는 40대 아줌마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불평이 아주 다 진심은 아니다. 징징거리지만 그걸 잘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지만 세대가 다른 그들을 통해 비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왠지 좋았다. 나 라는 깊고 깊은 우물에 새로운 물이 조금은 흘러들어오는구나. 


 햇살이 좋은 봄날, 많은 개들이 구조되어 내가 할 일들도 조금은 늘었다. 바쁜 와중에 미루고 싶은 마음도 반은 있지만 오랜만에 긴 여행을 가서도 열심히 프로젝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MZ 동생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다시 몸을 움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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