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이, 아니 코로나19가 거대한 파도처럼 온 나라를 덮어버렸던 그 봄이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학부모가 되는 해였다. 2월부터 스멀스멀 칩거의 기운이 올라오더니 결국 입학도 개학도 모두 미뤄졌다.
어이없게 3월 한 달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혹여나 학교 가기 전부터 안 좋은 습관이 들까 봐 아침 9시에 깨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EBS 채널 앞에 앉혔다. 그 지루하고 느린 수업을 보고 있자니 나도 잠이 들 지경.
아마 이 기간 동안 내 안에 있던 여러 가지 신념들이 서서히 붕괴되었던 것 같다.
그 첫 번째가 매일 아침 9시에 학교를 가는 것처럼 TV로 수업을 듣는 것으로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수업의 내용은 차치하고 수업을 듣는 태도라던가 선생님께 집중해야 하는 시간 등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TV 앞에 앉은 아이보고 태도를 똑바로 하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겠더라. 본질적으로, 과연 학교에서 항상 바른 태도를 취하는 것에만 보상을 함으로써 아이를 분별없이 모든 순간에 똑바로 앉아있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국가적으로 예외적 상황이었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지점을 느낀 학부모라면 아이의 공부를 이끌어가는 것이 결코 국가가 될 수 없음에 대한 경험적 학습을 했을 것이다. 나라는 모든 것을 멈추라 했지만 엄마는 한창 자라나는 아이를 두고 그럴 수 없었다. 인간은 이렇듯 자유의지가 있을 때 가장 창의적이 되는 법이구나.
조금씩 코로나는 심해졌지만 처음보다 격리의 정도는 조정되었다. 마스크를 하고 학원을 보낼 수 있던 늦봄, 아이를 50분짜리 학원에 넣어두고 상가 1층에 늦게 문을 여는 아주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함께 먹을 수 있었던 언니들과의 시간이 나에겐 벚꽃보다 아름다웠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하지만 다시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 짠한 아이들의 처지가 같은 사람들과의 티타임이 그 시간 유일한 위로였다.
코로나 기간에 본격 돌입하면서 되려 나는 즐거워졌다. 오늘도 내일도 불가한 외출, 실내에서 아이와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자 집을 정리하게 되었다. 책장도 옮겨보고 안 쓰던 장난감도 대거 버렸다. 소파의 위치를 바꿔서 거실의 공기도 바꾸고 좀 더 반듯해진 거실에 전지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려보자고도 해보았다. 여전히 두통이 있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으슬으슬 추웠지만 늦게 일어나서 빠르게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아이가 온전히 세끼를 먹을 수 있는 시간스케줄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 저것 하다보면 금방 몸이 따뜻해졌다.
밀키트를 사서 삼시 세 끼가 너무 고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고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플레이데이트를 가졌다. 오히려 이 기간 쓰지 않던 그릇들을 꺼내 쓰고 조금 더 예쁘게 플레이팅 하는 방법에 대해 자발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내가 주체가 되어 사용하게 되자 오전에는 블라인드를 활짝 열고 창문도 열어 환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맞바람 치는 거실과 부엌에서 매일 내가 해야 하는 똑같은 일들을 했지만 아이가 있으니 너무 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TV 속 선생님보다는 나를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이 시간 동안 내 아이는 가장 많은 학습적 성장을 이루었다.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접촉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날 자유롭게 했다. 만남을 거절하는 것도 쉬웠고 딱히 만남을 제안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쓸데없는 커피약속을 할 필요가 없었고 공동육아를 핑계로 여러 명을 함께 만나야 하는 일도 줄었다. 친정과 시댁도 뜸하게 되었고 아이와 나, 그리고 남편 우리 세 식구가 우리만의 색깔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