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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May 04. 2021

지레 겁먹기 대장

모두 하나같을 거라는 착각

퇴원했다.


퇴원해서 오니 동글이가 너무 반가워해줘서 눈물이 정말 철철 흘렀다. 정말 동글이 한테서는 처음 듣는 소리를 들 것 같다. 그 몇 주 간 동글이의 세상은 어땠을까. 깜깜했을까? 외로웠을까? 내가 버렸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주책맞게 계속하면서 미안했다. 그 대답이라도 하듯 동글이는 다신 어디 가지 말라는양 병원에서 싸온 짐 여기저기 마킹을...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글이도 나도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더 이상 내가 기억하던 일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병동에서 듣던 사이렌 소리. 집에서도 사이렌 소리만 들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거나 놀라거나 두렵거나. 그럴 때마다 귀를 막고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다. 이젠 사람이라는 게 '징그럽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징그러웠다. 믿고 싶지 않았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없지만 또 아무 생각도 안 하진 않았고 더 커다란 두려움과 무기력감 그리고 점점 짙어져 가는 의문.


왜 살아야 하는 거지?



아무 의미 없이 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켜고 아무 느낌 없이 식물들을 돌보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 의욕, 욕구 내가 왜 살지? 라는 생각만 막연히 반복할 뿐. 그리고 또다시 현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물론 문도 쳐다보지 못하고 택배가 와도 배달 음식이 와도 잠든 동생 깨울 때나 아빠가 집에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와야만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하루에 몇 끼씩 먹거나 아예 안 먹거나 그래서 위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대충 동생에게 부탁한 약국 약을 먹고 며칠 버티고 나면 또다시 반복.


대충 그즈음의 생활을 정리하면 이랬던 것 같다. 그래도 정신과는 가지 않았다. 그 검사지를 줄 테니까. 무언가의 병명으로 결국에 나는 명명되고 말 것이니까. 낙인이 생길 것만 같은 걱정.



그리고 그날이 다가왔다.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써야 하는 날.첫 교통사고의 수치심과 두려움이 나를 죄어왔다. 정말 너무 가기 싫었다. 하지만 경찰이라는 말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식이 있었기에 정말 죽기보다 가기 싫었지만, 엄마와 이모랑 가서 차분히 하고 오기로 며칠을 준비하고 마음먹고, 다시 포기하고 마음 먹고. 그리고 경찰서를 갔다.


엄마와 이모는 밖에서 기다리고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경찰관을 마주했다.

느낌이 왔다. 그 전의 사람과는 뭔가 달라. 친절도 친절이지만 분명 내가 당한 사건임을 정확히 명시해주며 속도와 사건일지도 일치, 그리고 그때 나의 상황과 이런 것들에 전혀 되묻거나 하지 않고 나를 안심 시켜 주면서 조서를 작성했다. 어지러웠던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생각보다, 아니 그때 보다 훨씬 수월하고 빨리 끝났다.


밖으로 나가 엄마랑 이모를 보며 눈물을 흘리니 놀라며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이모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곧 쳐들어갈 기세였지만 내가 흘린 눈물은 안도의 눈물과 사실 그동안 소위 말해 한 사람의 경찰 때문에 다수의 경찰을 '싸잡아' 생각했던 후회. 집으로 가서 그날은 몇시간정도 꿈도 안 꾸고 푹 잔 것 같다.


그리고 며칠 뒤에 이런 문자가 왔다.







너무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요즘에 몸이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어떻게 어떻게 정말 짧게 있었던 일만 쓴 것 같아요. 항상 글 읽어주시는 구독자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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