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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Feb 23. 2021

교통사고의 흐름

나는 분명 피해자였다. 그리고 무지했다.

"여보세요? 아무개 씨 되시죠?"


(통화 녹취를 그대로 옮김)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아 네 여기 **경찰서 교통조사계 박##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기 우리 선생님 신호대기 하고 있는데 뒤에 가서 추돌한 건가요 사고 내용은?"

"네"

"근데 어디 다치신덴 없으셔?"

"네. 지금은 없어요"

"상대방이 근데 술을 좀 먹었네요 근데? 보험에 접수는 되셨을까요 혹시? 상대방이?"

"저는 안 했는데 그분은 또 모르겠어요."

"아 그래요. 그러면 일단은 제가 상대방 조사를 해서 얼른 보험 접수하게끔 해서 우리 선생님 차를 수리할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드릴테니까 그렇게 알고 계시고 제가 상대방하고 통화를 하고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 그래서 병원 가신 사실이 없다면 굳이 경찰서 오시거나 그러실 필요 없으세요. 보험접수가 되면. 근데 만약 상대방이 보험접수가 안 되거나 보상이 안 되면 경찰서를 한 번 오시야지 뭐. 제가 상대방하고 통화를 하고 다시 연락을 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아침 8시 40분 경이었다. 잠도 못 잔 내가 겨우 화장실에서 나와 제정신이 아닌 채 전화를 받은 시각. 새벽의 교통사고로 담당 경찰은 자기 일을 시작하기 위해 전화를 한 듯했다. 목소리와 상황을 보자니 어제 그 순 찰차량의 경찰 중 한 사람은 아니었다.



점심시간 즈음 다시 경찰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통화 녹취를 그대로 옮김)

"네 여보세요"

"네 아침에 통화했던 경찰관이에요 상대방이랑 지금 연락이 됐는데 우리 선생님 차 보험접수 시킬라면은 차량번호하고 연락처는 알려드려야지 보험사에서 우리 선생님한테 연락 가잖아요. 우리 선생님 차량번호랑 연락처 알려드릴게요"

"아... 해주신다는 거지요"

"그렇죠. 상대방에서 이제 보험접수 할라면은 우리 선생님 차량번호랑 연락처를 알아야지 보험사 직원이 연락을 드려 보험접수번호 이런 걸 알려드리잖아 보험사에서"

"혹...시 저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아 ㅎㅎ 그런 건 아니고"

"어제 너무 무서웠어가지고..."

"아 그러셨구나. 피해 보상 받으실라면 연락처를 알려드려야 보험사에서 연락이 가지."

"아 네 그러면 그렇게 부탁드려요."

"예 알겠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애쓰셨어요."

"네. 수고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음 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가해자였다. 목소리의 느낌으로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자동으로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나의 생명을 위협에 빠뜨렸던 사람. 어제 사고를 낸 사람이라며 거듭 죄송하다는 소리를 했지만, 귀에 들릴 리 없다. 무서웠다. 그 와중에 굉장히 무서웠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인적이 드문 곳에 차가 아닌 사람이라도 쳤더라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차라리 내 차를 박은 게 잘 된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속이 복잡했다. 빨리 전화를 끊고만 싶었다. 출근을 핑계로 통화를 끝내고 꾸역꾸역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을 하고 나서는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머리가 좀 아팠지만, 연구발표회를 얼마 앞두지 않았고 연말에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었기에 그저 일에 매달렸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활동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알다시피 유치원이란 곳은 굉장한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리고 단 하나의 압박. 원감 선생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통사고 나서 어째 몸은 괜찮은 거야? 많이 놀랐겠다."

"네.. 뭐 근데 일단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선생님 만약에 입원을 하더라도 연구 발표회 끝나면 해 알았지?"

".... 네 뭐..."


입원을 할 만큼의 상처나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꽤 서운한 말이었다. 이해도 된다. 앞서 말했듯 모든 선생님들의 노력을 내가 마무리 하는 것이기에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정도는. 그래도 '기간제가 뭐 그렇게까지 일하냐' 라고 열심히 해 왔던 지난날들이 맥없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야근을 하며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가해자 측에서 계속 문자가 왔다. 




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선처를 구하며 그 뒤에 첨부된 사진에는 아래 링크의 사진을 보냈다. 




지금부터 보시게 될 사진은 불쾌 및 혐오감 또는 거북함을 유발 할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링크를 누르지 않길 권장합니다. 

https://ibb.co/vDtsrqZ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다른 교실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무슨 일이냐며 놀라 달려오셨다. 그리고는 메시지를 보여드리자 선생님들의 탄식과 거부감이 동시에 터졌다.


"이 사람 뭐니 진짜. ○○아파트 산다 그랬다면서, 차도 벤츠였다면서"

"어머 미쳤나 봐 진짜. 왜 이래. 다시 신고해 이거 협박 아니니?"

"선생님 괜찮아요? 퇴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당신에게 생명의 위협감을 주었던 사람이 이런 사진을 보낸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안쓰럽다? 아이가 불쌍하다? 딱하다? 


난 그날 밤 그 사람이 경찰관에게 하는 이야기를 똑똑히 들었다.


'우리 집이 ○○ 아파트인데(우리 지역에서는 랜드마크급인 고급 아파트) 거기까지만 태워주시면 안 됩니까?' 거기에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명품벨트와 명품 옷, 그리고 옷 사이로 보이는 목, 팔 등에 있던 문신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한 번 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마치 너도 이렇게 만들어줄 거야 내지는 이런 사진은 얼마든지 보낼 수 있어 라던가. 내가 너무 겁이 많이 그런가 보다 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나의 고집은 일을 마치고 싶어했다. 그날도 계속해서 일을 했다. 아주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그날 이후부터 출근이 버겁고 식은땀을 흘리는 등 평소와 달리 몸에 이상 반응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그 프로젝트를 마치지 못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내가 담당하던 모든 일을 맡기다시피 해야 했고 연구회는 그렇게 끝이났다. 


원장, 원감 선생님 포함 모든 선생님들께서 고생했다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면목이 없었다. 게다가 ppt의 마무리는 내가 한 것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찝찝한 마음도 한켠에 있었다. 발표회 이후 유치원은 한결 숨 고르고 연말 정리에 몰두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머리와 목이 계속 아프고 출근도 못하고, 잠은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는 것도 먹지 못한 채. 



계속되는 목과 머리의 긴장감, 출근할 때마다 시작되는 구토 전쟁, 피곤해도 이루지 못하는 잠. 결국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고 경찰관에게 전화했는데 담당 경찰관이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경찰관에게 가해자가 자꾸 합의를 요구하는 데에 대해서 법적 조치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물었다. 경찰관이 이미 '송치' 된 사건이라서 뭐 경찰에서 합의하라 마라 할 그건 아니며 상호 간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했다. 왜 처벌도 받지 않고 경찰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건지. 

"그럼 계속 합의하자고 연락이 오는데 제가 저는 병원에 가고 싶고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은 거에요?"

"그건 뭐 두분이서 알아서 하시고 정 싫으시면 수신거부를 하시던가..."

라는 귀찮은 듯한 목소리의 대답이 건너왔고 나는 평소의 습관처럼 감사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상대방은 진정한 사과가 아닌 말도 안 되는 얘기로 하루하루 목을 죄어오듯 선처만 바라고 있고 병원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너무 답답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사건접수번호를 알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여 또다시 담당 경찰관과 통화를 했다. (적은 내용은 중간부터)


"그분이 치료비를 개인적으로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우리 선생님 그때 당시 괜찮다고 하셔가지고 저는 이미 사건 종결해서 검찰로 송치한 사건이에요."

"제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는데요?"

"그때 괜찮다고 하셨잖아요 저한테. 그래서 차량 수리비 저 수리 받는 것만 해가지고 그러면 그렇게 해가지고 핸다고 하니까는 그러면은 경찰서 굳이 안 오시게끔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통화할 때. 그리고 보상 관련에 대한 부분은 두 분이서 얘기하셔야 되요."

"아니 저는 보상을 받고 싶은 건 아니고 지금 제가 몸이 안 좋거든요"

"상대방하고 얘기해보셔야지"

"그럼 그때 괜찮다고 했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 거에요?"

"병원 안 갔다고 괜찮다고 다친 데 없다고 그러셨잖아요 저한테"

"당시에는 그랬는데 병원을 바로 안 갔다는 얘기 었는데"

"하... 지금까지 얘기 없으셨다가 이제 와서얘기하시면 어떻게 해요. 벌써 다 검찰에 송치했단 말이에요 사건을."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에요? 근데 그때 당시에는 새벽에 사고가 났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제가 새벽에 전화를 한 게 아니고 다음 날 전화 드렸잖아요. 그때도 괜찮다고 하고 그다음날도 수리 비용 관련해서 전화 드렸는데 그때도 아무 말씀 없으셨잖아요."

"그때 언제 전화하셨지... 하여튼 그러고 나서 지금 병원에 가려고 하는 건데 그 사람이..."

"그때는 지금 한 거의 근 열흘 가까이 지나가지고 병원간다고 하면 누가 그걸 인정해주겠냐는 이 말이죠"

"근데 병원이, 제가 지금 그때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나중에 아플 수도 있는건 아닌거에요?"

"아이 물론 그럴 수야 있지만은 그 당시에는 괜찮다가 열흘 정도 지나서 병원 간다고 하면 누가 인정하느냐는 거죠."

(중략)

"그 사람이 보험 접수를 안 해주고 치료비를 준다. 하면 그 치료비를 받고선 치료를 받으시던가 하셔야 해요."

"그럼 그때 병원에 갔으면 어떻게 됐던 거에요?"

"오셔가지고 진단서 끊어서 오셔가지고 조사를 받아가지고 그 사람 우리 선생님 다친 부분에 있어서도 처벌을 받죠. 지금 음주운전하고 대물피해만 해가지고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니까요."

(이하생략, 영상으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들으면서도 이상했던 말들은 얼마정도 받을 수 있을거라던지, 나쁜 사람같지 않다 라 던지...


그 때 내가

송치 : [명사 법률] 수사 기관에서 검찰청으로, 또는 한 검찰청에서 다른 검찰청으로 피의자와 서류를 넘겨 보내는 일.


그 때 담당경찰관이 

다치다: [동사] 부딪치거나 맞거나 하여 신체에 상처가 생기다. 또는 상처를 입다.


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바로 알았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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