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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STA Feb 20. 2021

새벽 4시의 교통사고

뼈아픈 후회

 2013년 근무했던 사립유치원에서의 1년이 지옥 같았던 데다 일과 휴식을 스스로 조정하고 싶어 국˙공립 유치원 기간제 교사의 길을 택했다. 이곳저곳 짧든 길든 일을 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의 이름이 여기저기 남게 되었고 지인을 통한 계약 등이 어렵지 않았다. 각각의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고 수업법, 환경, 유치원마다의 특성들을 눈여겨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내가 2017년 당시 다니고 있던 유치원은 국립 유치원으로 교육부 산하에 있었다. 우리나라에 단 3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치원이었으며 이 3개의 유치원은 연구학교로서 유아에 대한 상설 연구를 하는 일도 했다. 여기서 잠깐 유치원의 종류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국립유치원: 국가가 설립·경영하는 유치원

공립유치원: 지방자치단체가 설립·경영하는 유치원(설립주체에 따라 시립유치원과 도립 유치원으로 구분 가능)

사립유치원: 법인 또는 사인(私人)이 설립·경영하는 유치원


으로 나뉘는데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국˙공립 유치원이 모두 같은 줄 알지만 위에 설명처럼 국립과 공립은 구분이 된다. 원래는 2개월만 근무하려 했으나 무려 2년 가까이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본래 자리의 선생님이 휴가를 연장하면서 자동적으로 재계약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즈음에 알던 선생님들에게는 왜 사지로 들어가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름 영광이었다. 배울 일이 정말 많았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후회 없이 해보았기 때문에.


 모쪼록 상설 연구를 마치면 3개의 유치원들이 모여 상설 연구 발표회를 하게 되는 게 ppt를 다룰 줄 알았던 나는 연구부장 선생님을 도와 ppt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1년 동안의 연구, 1년 동안의 수고로움, 나에게도 선생님 같았던 분들의 노력. 그것을 내가 마지막에 모아 축약하고 빛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압박도 꽤나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동료 선생님들 및 원감 선생님과 회의도 하고 확인과 칭찬도 받으며 나 스스로 굉장히 자부심을 느꼈다. 임용 중인 교사도 쉽게 오지 못하는 곳, 바깥에서 잘 알지 못하는 국립 유치원의 부분들, 무려 교육부 바로 아래서 일을 하고 있다는 그런 쓸 데 없는 자부심은 내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해의 상설 연구 발표회는 12월 1일이었던 터라 ppt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2017년 11월 27일. 그날도 디테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야근 뒤 퇴근했다. 퇴근하고 곧장 집으로 가라는 원감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한 채 24시간 하는 카페를 들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었다. 내가 이유치원에서 사랑 받은 만큼.
해내고 싶었다. 존경하는 선생님들께 배운것들을 한 없이.




 짜내고 짜내다 3시 40분쯤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도로에는 차가 드문 드문 있었다. 집에가 눈이라도 붙일 생각에 부지런히 집으로 향하다 빨간 불이 되었다. 왕복 6차선의 3거리 교차로. 가장 바깥쪽 차선에서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던 중 뒤차가 내차를 쾅하고 박았다. 정신을 잃거나 다치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피곤하기도 하고 적잖이 놀란 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뭇거렸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 듯 귀는 멍하고 뒷목이 아팠다. 차를 정지해 두고 가만히 사태를 파악해보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박은 사람이 뒤에서 내려 괜찮은지 죄송하다던가 어떤 자세라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은가. 얼얼한 정신머리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어 내려서 뒷 차 쪽으로 걸어갔다. 조금 떨어져서 운전석 있는 곳을 쳐다보니 운전자가 창문을 내린 채 오라는 손짓을 했다. 지금도 도대체 나란 사람에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었을까. 바보 천치같이 다리가 아픈 사람이거나 일신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걱정이 되기까지 하여 몇 발자국 가까이 갔다. 운전자의 초점 없는 동공, 실외임에도 진하게 풍기는 술 냄새로 그제야 음주인걸 깨달았다.


뒷 차: "죄송합니다(라고 적겠으나 들리기에 '죄서 맘 다'라고 들림) 차를 좀 빼주시면 제가 이쪽으로 해서 갈게요"


차를 빼 달라니. 우회전을 할 셈이었던 건가? 그제야 차량이 벤츠임을 확인(장애인 비하 발언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걱정을 한 내가 순간 스스로 뒤통수를 때린 듯했다. 차가 벤츠인 걸 알았다면 그런 생각까진 안했을텐데). 우선 알았다며 차 문을 열고 시동은 끄지 않은 채 애써 웃음 지으며 친구에게 전화하는 척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뒤차가 계속해서 엑셀을 밞았다. 내 차가 정차 상태였으므로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자 계속 액셀을 밟았고 그에 따라 뒤차의 앞 범퍼와 내 차 뒷 범퍼가 마찰음을 계속 냈다 멈췄다를 반복 했다. 다른 말로 예를들어 우회전이 하고 싶었다면 약간의 후진을 한 뒤 차를 돌려 가는 방법도 있었을 터. 술을 얼마나 먹었기에 그 정도 판단도 못하는 것인지. 스스로 음주상태라는 것은 인지하는 중인지. 차로에 서성이며 별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진 않을까. 6차선 건너 맥도널드 24시간 하는 곳까지 뛰어가서 도움을 요청할까 하며 밤이라 차들이 꽤 속도를 내는 도로에서 서성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운전자가 내려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객관적 서술 하에 몸을 잘 가누지도 못했고 발을 질질 끌고 어깨를 들썩이며 걸어오면서. 실로 무서웠다.


(주관적 기억으로 들렸던 말)'아우 죄서맙미다 초점 빼주시면 제가... 쪼끔만 촤점 빼주시면..' 하며 계속 다가와 나는 평소 후각이 예민하긴 하나 승용차 두대 가량 떨어진 상태에서도 술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그 사람은 목 부근에 문신이 있었으며 구찌 벨트를 하고 있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건가. 몸을 피하다 실제 우회전하려는 경차에 치일 뻔해서 경적소리를 듣고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선 알겠다고 하고 각자 차에 탑승했다.  

차에 앉아 우선 문을 잠갔다. 경찰의 정확한 위치를 묻는 전화가 와서 위치를 설명하는 중에도 뒤차는 수차례 액셀을 밟아 차에서 드드득 드드득하는 소리를 차에서 들어야만 했다. 경찰의 목소리를 듣자 안심이 된 다는 그제야 눈물이 터졌고 가까스로 설명을 하고 있자니 반대편에서 경찰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97. 내 눈 앞에서 그 사람은 면허가 취소되었다.

 

뜬금없이 그 사람은 '우리 집이 ○○ 아파트인데(우리 지역에서는 랜드마크 급인 고급 아파트) 거기까지만 태워달라면서 경찰에게 얘기했다. 경찰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고 대리를 불러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내 상식에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사람을 왜 집으로 보내는 거지? 왜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는 거지? 과연 대리를 불러서 집에 가는 것 까지 확인은 하긴 할까?' 어딘가 찝찝하게 각자의 신원을 적고 있는데 휘청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수차례 죄송하다며 내쪽으로 몸을 기울이듯 다가왔다. 경찰이 제지해주긴 했지만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과 공포를 느낀 상태였던터라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어찌어찌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레카에 실려 아빠에게 연락해 교통사고 소식을 알렸다. 기사님은 나를 집 앞까지 태워주고 아빠에게 어떤 공업사로 가는지 명함을 주는 등의 뒤처리를 했다. 아빠는 괜찮은지 계속 물었지만 괜찮을 리 만무했고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조차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사건 담당 형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세요? 아무개 씨 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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