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세상이 접히는 순간
아침이면 늘 같은 자리에 선다.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얼굴로 거실을 가로지르는 사람. 서둘러 입은 셔츠 위로 재킷을 걸치고, 잠결에 몸을 일으킨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입술을 가볍게 맞추고 "다녀올게"라고 말해준다. 그 뒤에 들리는 현관문 소리. 익숙한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간다.
그 사람의 하루가 무사하길, 크게 웃는 일은 없어도 마음 다치지 않고 돌아오길. 별다를 것 없는 아침이지만, 그 마음 하나만큼은 날마다 새로 시작된다.
누군가를 배웅하고 나서야 비로소 혼자라는 감각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 고요한 틈새에서 내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이 깨닫는다. 사람들은 흔히 '특별한 날'을 오래 기억한다고들 하지만, 내게 오래 남는 건 요즘 같은 평범한 아침들이다. 이유 없이 마음이 잠잠해지고, 고요한 시간 속에서 '괜찮다'는 확신이 밀려드는 순간들. 오늘도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언제나 그 마음부터 시작된다.
저녁이면 다시 그 문이 열리고 익숙한 발소리와 함께 하루가 돌아온다. "다녀왔어."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국자를 든 채 주방에서 달려 나간다. 먼저 눈을 마주치고 먼저 웃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웃어줄 때 하루가 정말 돌아온 것만 같다. '나에게는 이렇게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구나,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마음을 그도 느꼈으면 좋겠다. 그는 웃으며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매일 봐도 그 순간은 언제나처럼 다정하다. 문 밖의 세상이 이 집 안으로 부드럽게 접히는 듯이.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면 혼자 있을 땐 조용했던 집이 그제야 웃음으로 가득 찬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 장난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 순간엔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게 된다. "내가 너 때문에 웃는다." 남편은 가끔 그렇게 말한다. 나도 안다. 그 사람의 웃음에 내가 있다는 걸.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 덕분에 하루 중 가장 따뜻한 표정을 짓게 된다는 걸. 별일 없던 하루가 그 웃음 하나로 기분 좋은 날로 바뀐다. 그건 매일 반복되는 것 중에 가장 특별한 순간이다.
밤이 되면 남편은 늘 똑바로 누워 잔다. 고개도 자세도 정면을 향한 채. 마치 자는 것도 성실하게 하는 사람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귓가에 익숙한 숨소리가 찾아온다. 오늘도 다 써버렸다는 듯 묵직하고 규칙적인 숨결이 어둠을 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마음 한쪽이 괜히 아려온다.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누구보다 늦게 몸을 누이는 사람. 요즘은 그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이 집의 고요를 채우는 소리.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비로소 하루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그가 마음 다치지 않고 돌아와 주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로 마음이 놓인다. 세상이 언제나 온기를 내어주는 곳은 아니기에, 이 집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기를 더 바란다. 가끔은 아무 일도 없던 하루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런 날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나면 마음은 어느새 감사에 가 닿는다.
‘무탈한 하루가 이렇게나 귀한 것이었구나.’ 시간이 겹칠수록 삶이 건네는 뜻을 읽어간다. 오늘도 무사해서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