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정하지 않아서 내가 먼저 다정해졌다

스스로에게 선물한 행복

by 소현

어릴 적부터 사소한 것에 쉽게 행복을 느꼈다. 좋아하는 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일, 따뜻한 물로 씻고 나와 이불 속에 들어가는 순간,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문장을 만나는 것, 순간을 나만의 장면으로 만들어주는 음악. 그런 조각들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채워주곤 했다.


그렇게 쌓인 작고 보드라운 순간들이 나의 하루를 지탱해 주었다. 세상이 늘 다정하지 않다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이 언젠가 마음을 건네줄 날을 기다리며 내가 먼저 손을 내밀려 애썼다. 돌이켜 보면 그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아이의 작고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떤 사람들은 내 마음의 깊이를 쉽게 짐작하고 판단하려 들었다. "참 태평해 보여."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아 부럽다." 겉으론 칭찬처럼 들렸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들의 말이 왜 불편했는지 처음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지난 시간을 찬찬히 더듬어 보았다. 잊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 속엔 말없이 견뎌낸 날들이 가득했다.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며 무언의 기색을 읽어내야만 했던 아이. 마음은 자주 벼랑 끝에 놓였다. 말하고 싶은 마음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매번 삼켜졌고, 침대 모서리에 웅크린 채 스스로를 달래야 했다. 울음소리조차 허락되지 않던 밤, 베개를 적시며 무너졌던 시간들. 그럼에도 나를 다시 붙잡아 일으킨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닌 너무나 작고 평범한 것들이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기쁨의 온도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것만이 내게 허락된 몫이었다.


‘행복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스스로 걸어간 끝에 만나는 것이다.’


나는 한때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지금 이 행복이 진짜일까, 괜찮은 척하며 나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안의 고요함이 정말 평온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웃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마음 한편을 잠식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내 안에서 자연스레 피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손 닿을 수 있는 기쁨에 몰두했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따뜻한 것을 붙잡으며, 내 하루를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냈다. 그건 피하거나 외면한 삶이 아니라, 선택하고 붙들어낸 삶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그 방식으로 지금까지 나를 지켜왔다.


이제는 나를 가볍게 판단하려 드는 말들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깊이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은 채 던지는 단정적인 시선. 그 모든 말들 앞에서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바라보든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더는 스스로의 행복을 작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걸어온 길, 견뎌낸 마음,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온 하루들을 기꺼이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정히 지켜낸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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