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부터
엄마는 참 예뻤다. 사진 속 엄마는 젊었고, 말갛고 투명한 웃음이 얼굴 가득 번져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엄마가 지나온 날들을 내가 이미 알고 있어서였을까— 엄마는 그 순한 얼굴로 아빠를 만났고, 첫사랑과 결혼해 나와 동생이 태어났다. 네 자매 중 셋째였지만, 언제나 장녀처럼 앞장서서 살았고, 책임지는 일엔 늘 자신을 먼저 내세웠다. 가족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았고, 몸이 아픈 날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주변 친구들이 어려울 때면 언제나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남을 챙기느라 지갑은 자주 가벼워졌고, 마음은 더 자주 닳아 있었다. 가족보다 친구를 앞세우는 날들이 많았지만, 엄마는 그런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 말없이 곁을 지키고, 자신의 하루를 접어가며 아빠의 선택을 함께 감당했다. 엄마의 몫은 언제나 가장 마지막이었다.
어린 날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늘 바쁜 사람, 어딘가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뒤 나는 잠시 이모 손에 맡겨졌고, 엄마는 긴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춘기를 지나며도 엄마는 곁에 없었다. 두 아이를 책임져야 했기에 엄마의 하루는 늘 일과 걱정 사이에서 이어졌다. 그 시간들이 엄마에게 얼마나 고단했을지 그땐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의 손을 바라보다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숨소리만으로도 알 것 같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제야 그때의 엄마를 조금씩 따라가고 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는 장례식장에 오기를 망설였다. 세월이 내려앉은 얼굴을 사람들 앞에 보이는 게 싫다고 했다. 거울 앞에 서는 일조차 어느 날부터 생략했을 엄마의 세월. 변해버린 얼굴. 그 얼굴을 만든 삶의 흐름, 그리고 아빠.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서러움이 자꾸만 올라왔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왔다. 오지 않아도 될 이유는 많았지만, 엄마는 결국 그 자리에 있었다. 조문객들 틈에 섞이지 않고 가족이 머무는 방 안에 하루 종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 방으로 인사를 오면 엄마는 고개를 숙였고, 아빠의 친구들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우리 형수님 참 예뻤었는데, 이 바보 같은 놈... 형수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 말은 위로였겠지만 엄마를 더 작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 속에 엄마는 자신을 더 초라하게 느꼈다고 했다.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살아온 세월이 그 한마디에 다 드러난 것만 같았다며, 그날의 엄마는 그 어느 날보다 깊은 서글픔을 안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엄마가 와줘서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자주 아빠 꿈을 꾼다. 전화가 오면 늘 아빠 얘기부터 꺼낸다.
"너희 아빠가 꿈에 나왔어. 오늘은 그냥 웃고 있었어." 말끝은 항상 울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꼭 나에게로 돌아왔다. “엄마가 미안해.”
내 어린 시절을 꺼내는 듯한 그 목소리. 내가 느꼈던 외로움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엄마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빠의 부재가 엄마에게 남긴 시간. 처음으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 엄마는, 그동안 살아내느라 생각할 겨를 없었던 것들을 계속해서 되짚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는 모든 걸 내어주었고 우리가 편히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엄마 덕분이었다는 걸. 그런데도 엄마는 주지 못한 것들만 오래도록 마음에 담았다.
엄마의 사과는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었고, 전하지 못한 마음이었다. 주지 못한 것보다 주기 위해 견딘 시간이 더 길었는데도 엄마는 늘 그 짧은 빈틈을 먼저 떠올렸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제일 아픈 줄만 알았다. 혼자 외롭고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빈틈에서 가장 오래 아파해온 사람은 엄마였다.
"네가 살아온 시간보다 내가 널 사랑한 시간이 더 길어."
엄마의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던 그때부터 엄마는 이미 나를 품고 있었다. 그 마음은 단지 사랑이라는 말 하나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엄마는 자신의 삶을 한 뼘씩 덜어 나를 살아내게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의 마음 위에서 안전하게 자랐다. 나는 이보다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엄마는 내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자식의 뒷모습 하나로 하루를 버티고, 살아갈 이유를 쌓아갔다. 엄마는 말로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내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증명했다. 그 사랑 덕에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슬픔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끝내 슬픔으로만 남지 않는 이유는, 내가 받은 그 사랑을 이제는 온전히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랑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말마저 어쩐지 이기적인 건 아닐까 망설여지지만, 그래도 이 마음 하나만큼은 남기고 싶다. 엄마가 살아낸 날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 그 사랑이 나에게는 전부였다는 것. 이제는 내가 그 사랑을 기억하며, 나의 삶으로 오래도록 되돌려주겠노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