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틔우는 시선

알아봐 준다는 것

by 소현

말보다 먼저 닿는 건 헤아려주는 눈빛이다.

가장 깊은 위로는 마음을 읽어주는 순간에 깃든다.




가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말하지 않아도 내 안의 진동을 알아채는 사람.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 아닌 그 너머를 봐주고, 스스로조차 보지 못했던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며, "나는 그걸 보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건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더 깊고 신중한 태도였다. 말투의 맥락이나 눈빛의 떨림, 주저함의 간격, 무심한 척 던진 말들 사이에 숨어 있는 마음을 알아채는 일. 그런 마음은 조금만 마음이 앞서도 금세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조심스럽게 같은 자리에 머물며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


우리는 종종 TV 속에서도 그런 장면을 마주한다. 오은영 박사님 앞에 앉은 사람들이 몇 마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 그 사람들을 울게 한 건 박사님의 말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었다. "아, 그러셨군요."라는 짧은 한마디에 묻어난 태도. 판단하지 않고, 다독이지도 않고, 그저 당신의 마음을 보고 있다는 기척. 그 기척이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방금 전까지 담담하던 얼굴이 어느 순간 툭 무너지는 건, 허락을 받은 마음이 제 몸을 찾아가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마음을 꺼낸다는 건 언제나 떨리는 일이다. 나 역시 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 적이 있다. 입을 열면서도 망설였다. 괜히 꺼냈다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쩌지, 이 마음이 약점이 되면 어쩌나. 그렇게 머뭇거리며 꺼낸 이야기를 들은 그는, 한참 말을 아끼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오래 참고 있었구나."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 말 안에는 나도 인식하지 못했던 내 노력이 담겨 있었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위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것은 이해받았다는 감정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오랜 시간 버티며 참아온 숨이 처음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살다 보면 자신조차 미워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바보같이 서툴고, 괜히 예민해지고, 말을 꺼내는 순간 어긋나기만 할 때. 그럼에도 누군가 말했다. "그런 네가 좋아. 진심이 보여." 정리되지 않은 말속에서도 나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나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다. 진심이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은 때때로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는 사실이 나를 어른으로 만든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줬기에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면이나 결점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불안과 조심스러움을 볼 수 있기를. 말이 꼬일 땐 그 안의 망설임을, 행동이 서툴 땐 그 안의 용기를, 어색한 침묵 너머의 애씀을 먼저 볼 수 있는 사람이기를. 내가 받았던 위로처럼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삶이 아닐까.


알아봐 준다는 건 결국, 사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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