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도 빛은 있었다

by 소현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마음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그랬더라면...' 후회는 꼭 뒤늦게 와서 끝없는 가능성을 상상하게 했다. 현실이 불편할수록 더욱 자주 찾아왔다. 과거로 돌아가 잘못된 선택을 고칠 수만 있다면 더 나은 삶이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누군가 물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바꿀 거야?" 아쉽고 후회스러운 장면들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질문 앞에 서니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 하나만 달라도 지금의 내가 아닐 것 같아 마음속 어딘가에서 망설임이 일었다. 미숙하고 흔들리던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거라면, 그조차도 소중했던 걸까. 몰랐는데 나는 나를 꽤 좋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삶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은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불안정했다. 꿈도 희미했고 미래도 선명하지 않았다. 뿌리는 계속해서 흔들렸고, 그때마다 머물 곳을 찾지 못한 마음은 늘 어딘가를 헤맸다.


그런데도 삶은 그렇게 유영하듯 흘러가는 동안 뜻밖의 장소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계획하지 않았던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어느새 내 하루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따뜻한 눈빛 하나, 내 말에 끝까지 귀 기울여주던 태도, 아무 조건 없이 내 옆에 있어 주던 마음들. 그 모든 것이 긴 시간을 지나 빛으로 남았다. 그들은 내가 그 시간을 다시 고르지 못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 사람들을 잃게 될까 봐, 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까 봐, 과거를 바꾼다는 상상조차 마음이 아렸다.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이름이 되었고, 나는 그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가지지 못했던 것, 이루지 못한 꿈들은 오히려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발견하는 감각을 키워주었다. 그 결핍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주말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는 온전한 시간, 남편과 나란히 앉아 좋아하는 반찬 하나를 같이 나누는 저녁, 하루의 끝을 알리는 고요함.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 품고 있는 온기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삶의 좌절과 아쉬움은 다른 이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내게 주었다. 겪어본 마음은 멀리서도 알아보게 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무심히 스치는 표정 하나로도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그저 곁에 있는 일이 전부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라도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그 사람이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말보다 오래 남는 위로는 때로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틸 힘이 된다는 걸 믿게 되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역시 삶의 뜻밖의 길에서 시작되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모든 순간들이 글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더 정직해졌고, 더 다정해졌으며, 삶을 조금씩 더 사랑하게 되었다. 슬픔과 기쁨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내게는 글이었다.


삶은 내 계획보다 늘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 위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따뜻한 빛이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은 순간에도 이제는 믿는다. 삶이 품고 있는 나만의 의미와 조용한 빛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길 위에서 다시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마다 잠시 멈춰 바라볼 것이다. 분명 그 자리에도 빛은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이제 그 빛을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한다. 앞으로 만날 새로운 슬픔과 아쉬움, 그리고 그 속에서 기다리는 작지만 단단한 기쁨을 바라보며.

이전 04화아빠를 안고 돌아오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