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어른들

by 소현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 내가 생각한 어른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존재였다. 자유롭고 단단하며, 흔들림 없는 사람들. 언제나 자신의 길을 또렷이 아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나는 여전히 길을 모른다.


언젠가부터 주변 사람들의 웃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 있고, 웃음은 어쩐지 체념처럼 들린다. 세상을 다 아는 듯 단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지혜처럼 들리는 말들 사이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번져 있었다.


어릴 적에 나는 ‘분명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믿음이 있었다. 근거 없는 확신이었지만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현실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세상은 원래 이렇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단정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하지 못하는 이유에 더 귀 기울이게 되었고,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일마저 두려워졌다. 그렇게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두며 점점 더 나를 잃어갔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각자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가족을 위해 버티고, 어떤 이는 생계를 위해 몸을 갈아 넣는다. 또 다른 이는 혼자라는 고요 속에서 하루를 삼켜내고, 누군가는 부모를 돌보느라 자기 시간을 내려놓는다. 아이를 키우는 이는 자신을 뒤로 미루고, 회사를 책임지는 이는 숫자 하나에 인생을 건다. 오랜 시간 일터에 몸을 바친 이들은 자신이 여전히 필요한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관계 속에서 늘 들어주는 사람이 된 이는 자기 이야기를 끝내 삼킨다.


이 무게들은 대체로 말이 없다. 그래서 더 무겁다. 웃으며 버티는 얼굴 뒤, 단 한 번의 균열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모두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리고 지금,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간다. 잘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그들을 위로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다만 지금도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기를, 그 존재가 스쳐 지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삶이 어딘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애초에 복잡하고 버거운 구조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묵묵히 자기 몫의 무게를 감당하며 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나는 어쩌면 아무도 해주지 않았을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누구도 대신 짊어지지 못할 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조용히 견뎌온 사람들. 쉽게 울 수도, 멈출 수도 없어 침묵을 삼킨 사람들에게.


"오늘도 어김없이 일어나고, 말을 아끼고, 표정을 감추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아냈어요. 혹시 오늘도 ‘이만큼이나 했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느낀다면, 사실은 당신 덕분에 무사히 지나간 하루였을 거예요. 그렇게 이어지는 하루들이 모여 지금을 만들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우리가 어릴 적 바라던 어른의 모습은 환상일지 몰라도, 지금 이렇게 하루를 살아내는 일 또한 결코 작지 않다. 무엇이 되지 못했더라도, 또 무엇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도 이미 수많은 선택과 책임을 감당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평범해 보였던 날들 속에 쌓여온 우리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꿈꾸던 위대함에 이미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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