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ㅅ씨-목포에서한 달살기10
후숙 되어 노랗게 변할까 해서 냉장고에 넣어 놓은 파파야가 기운을 잃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태국에서 왜인지 먹어봤던 것만 같아서 그린 커리에 넣어보기로 했다. 박과 식물인 '동아'와 비슷한 맛이 날 것 같았다. 달달하고 무른 무같은 맛.
뻣뻣한 파파야 껍질을 필러로 벗겨낸다. 그새 가운데 있던 씨들이 많이 부풀었다. 씨를 제거하고 반달 모양으로 두껍게 썬다.
왠지 끓이면 모든 커리가 맛있어지는 커다란 냄비를 꺼내와 올리브유를 콸콸 붓는다.
기름은 넉넉하게. 채 썬 적양파를 볶다가 부드러워지면 으깬 마늘과 다진 태국 고추를 넣어 볶는다.
이탈리안 소시지인 살시차를 케이스에서 꺼내어 으깨주면서 뒤섞어 준다. 각종 항신료로 간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따로 향신료를 많이 추가할 필요가 없어 간편하다.
썰어둔 그린 파파야와 가지와 물 추가. 태국의 맛을 더해줄 라임 이파리와 월계수 잎도 추가.
재료들이 보글보글 끓고 파파야가 익어갈 즈음 그린 커리 페이스트를 넣는다.
언젠가 세영이 만들어 주었던 그린커리 쌀국수가 너무 맛있어서 한동안 그린커리에 꽂혀 있었던 때가 있었다. 마침 그해 봄에 친구에게서 받아 온 고추 모종이 폭발적으로 자라나 집에 고추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직접 그린 커리 페이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어떤 레시피가 가장 현지의 맛이 날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들을 여럿 훑어 보았다.
그린 커리 페이스트에는 보통 초록 고추, 라임 껍질, 고수의 뿌리, 마늘, 생강, 향신료 몇 가지가 들어간다. 이를 큰 절구에 넣고 쿵쿵 빻으면서 재료가 한데 뒤섞이고 페이스트가 될 때까지 이것을 계속한다. 말이 쉽지, 정말 장난 아니었다. 현지의 맛이란 멀고도 험한 길이라는 사실.......
결국 중간에 믹서기로 갈아탔다.
그린 커리 페이스트를 넣고 좀 더 신선한 맛과 색깔을 추가하기 위해 오이 고추를 갈아서 넣어줬다.
되직한 커리가 아니라 국밥처럼 먹을 수 있는 수프커리이다.
태국에서는 길거리에 솥을 걸어놓고 파는데 주문하면 작은 비닐봉지에 빵빵하게 담아서 준다. 먹기 전 그릇에 부을 때 흘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완성된 커리는 정말 딱 그 맛이었다.
오늘은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목포에 놀러오는 겸 요리하는 영상도 촬영할까 해서
촬영 겸 만들었던 가지 탕수와 푸주를 넣은 토마토소스.
푸주는 마라탕 말고도 여기저기 넣어보면 재밌다.
요즘 사민 노스랏의 <소금, 지방, 산, 열>이라는 엄청나게 두껍고 섬세한 요리책을 천천히 읽고 있는데, 끝은 어떨지 몰라도 요리의 시작은 엉망진창 얼렁뚱땅인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세영이 자꾸 대파나 양파를 넣은 파운드케이크가 맛있을 것 같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인지부조화로 대뜸 거부했지만 의외로 맛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