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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Jul 15. 2021

토마토, 어디까지 먹어봤니?

집ㅅ씨-목포에서 한 달 살기12

쿠킹 클래스를 앞둔 날.


토요일은 내내 가게에 혼자 있었다.

목포에 와서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은 처음이라서 자꾸만 창밖을 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었다.


일찍 일어나서 침낭을 개고, 세 개나 겹쳐서 깔아 두었던 요가 매트를 돌돌 말아두고, 땀이 줄줄 날 만큼 맨몸 운동을 했다. 가게 뒤편으로 가 스뎅으로 된 양푼에 빨랫감을 넣고 바디워시를 뿌린 다음에 그 위에 올라서서 샤워를 한다. 찬물에 뜨거워진 피부가 식는다. 발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며 빨래를 밟아서 빨고 있다.

옷을 짜서 널고, 선풍기를 앞에 틀어 놓고, 읽고 있던 책의 나머지를 다 읽어 버린다.

그리고 있던 그림도 이어서 그리다가 결국에는 또 완성하지 못하고 붓을 집어넣었다.

바닥을 한 번 쓸고 창문과 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또 뭐 할 게 있더라 잠시 생각한다.


한 번쯤은 가볼까 했던 딸기 케이크 가게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린다. 장 보러 가면서 ‘여기 사람들이 케이크 사러 많이 오더라.’ 하고 지나가듯 들은 가게이다. 모르는 길, 보도 블록 사이사이에 풀이 무성하다.

과일이 여러 종류 들어간 크림 케이크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며칠 전부터 가게에 계속 틀어두었던 <카우보이 비밥>을 연달아 보았다. 사운드 트랙이 정말 좋다. 놀랍게도 유튜브에 모든 에피소드가 다 올라와 있어서 럭키.




세영이 토마토를 한 상자나 사서 들고 왔다. 목포역 뒤의 구 청호시장에서 토마토를 사 오는데, 매번 가는 토마토 아저씨네는 새빨갛다 못해 터지기 직전의, 충분히 무르고 수분이 통통히 오르고 햇볕을 듬뿍 받은 알맹이들을 판다. 당장 먹어야 할 정도로 익어서 가격도 저렴하다. 토마토는 유통 기간까지 고려하여 보통 초록색일 때 수확한다고 했는데 같은 빨간색이라고 하지만 같을 리가 없다. 햇볕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받아낸 열매는 부드러운 붉은빛이 아닌 쨍한 빨간색을 띤다.

토마토와 함께 마침 시장에서 눈에 띄길래 사 왔다던 통통한 자두로 냉장고가 점령당했다. 빨간 동그라미들이 가득가득 귀여워.




7월의 쿠킹 클래스 주제는 ‘토마토, 어디까지 먹어봤니?’이다. 열심히 홍보하여 다행히도 사람들이 모였다. 여름에 한창일 채소 한 가지의 활용법만 두루두루 익혀도 식탁은 놀랍도록 풍성해질 수 있다.

요리법뿐만 아니라 토마토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조금씩 다른 맛과 향, 색과 질감을 가진 토마토를 쓰임에 맞게 고를 수 있어졌다.

완숙 토마토, 찰토마토, 짭짤이 토마토, 흑토마토, 체리토마토, 대추 토마토. 마치 와인처럼 각각의 종이 어떤 맛을 갖고 있는지 비교하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세영은 커리에는 빨간 완숙 토마토를, 토마토 밥에는 진한 흑토마토를, 삼발과 샐러드에는 달콤하고 작은 토마토를 넣기로 했다.



조금은 어색한 듯 조용하다가 또 떠들썩하다가. 사이사이에 부드러운 침묵이 배어 있다가 사진을 찍는 ‘찰칵’ 소리와 칼이 도마를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주방이 좁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드물게 꽉 차서 북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오전 시간에 찾아와 주신 분들을 보내고

잠시 바닥에 기절해 있다가

아직 바깥이 어둡지 않은 저녁에  번째 클래스를 시작했다. 같은 요리지만 같지 않다는 점이  재미있다. 오전에는 샐러드에 들어가는 스모크 치즈를 얇고 길쭉한 네모로 잘랐는데, 저녁에는  깍둑썰기를 해주셨다. 개인적으로는 깍둑썰기에  . 씹었을  치즈의 맛이 충분히 길게 남는 것이 좋다.




같이 차려낸 밥을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전날 구운 감자 포카치아가 참 맛있는데, 같이 드셔 보세요. 요즘은 어디가 좀 안 좋아요. 그럼 거기에 좋은 아로마 오일을 좀 알아봐 드릴까요? 저번에 이 가게 짜이가 맛있었는데, 제가 살 테니 같이 마셔요. 그럼 저희는 어제 구운 쿠키를 쏘겠습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가시는 길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정해진 양에 정해진 만큼이 아니라, 있는 대로 다 퍼줄 수 있어서, 그 시간 동안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우리가 갖고 있고 생각나는 것들을 다 내어주고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같이 시간을 나눠요. 그 시간 동안 벌어지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눠요. 그것이 음식이든 걱정이든 인사이든 칭찬이든 어색함이든 마음이든 다 좋아요. 이번 기회에 한 번쯤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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