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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May 07. 2022

플리트비체에서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여행, 둘째 날 2

자그레브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틀어 준 음악이 좋았다. 

굉장히 흥겨운 가요인 것 같았는데 어느 나라 말이었을까. 아무튼 의미로는 전달되지 못하는 흥겹고 낯선 소리들. 





플리트비체에서 보트를 타는 구간이 있었는데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넓은 풀밭에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나 카페가 몇 개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아침마다 총알을 장전하듯 아침밥을 꽉꽉 채워 먹고, 점심에는 회사 주변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먹고(대부분 양이 아주 많았다), 퇴근하면 그날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이것저것 군것질을 잔뜩 했다. 덕분에 두 달만에 굴러다니는 중인데, 여행에 와서는 무언가를 실수 없이 빠르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서일까 부다페스트만큼 식욕이 없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산책까지 하고 나니 배고파서 카푸치노와 치즈 스트루틀을 사 왔다. 사과와 치즈맛 두 가지가 있었는데 사과맛을 고르지 않은 걸 후회했다. 헝가리에 투로(Turo)라고 쓰여있는 제품들, 특히 초코바처럼 생긴 스낵이 있는데 레몬향과 설탕을 넣어 달달한 코티지치즈를 초콜릿으로 코팅한 것이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뭔가 친해지기 어려운 친구들이다..... 굳이 따지자면 돈 주고 애써 만나고 싶지는 않은 맛. 안타깝게도 치즈 스트루들은 상상했던 단짠의 조합이 아닌 익숙한 코티지치즈, 그 녀석이었다. 하지만 배고파서 다 먹었다. 



자그레브에서 무엇을 먹을지는 헝가리를 떠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너무나 유명한 트러플 버거와 트러플 감자튀김. 터미널에 도착하기도 전에 버스 터미널과 햄버거 집 사이의 경로를 검색하고 우리의 트러플 버거를 향해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비가 한 두 방울 툭툭 떨어지는 길을 열심히 걸어서 자그레브 올드 타운 쪽으로 갔다. 깜빡하고 유로를 안 챙겨 나오기도 했고 굳이 현금을 인출할 필요가 있을까 해서 우리는 둘 다 크로아티아 화폐인 쿠나가 없었는데, 정말 죽어도 현금을 만들지 않아서 여행 내내 교통권 없이 걸어 다녔다. 


아마도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멘솔 담배의 판매가 금지된 듯 보였는데, 멘솔을 좋아하는 제렁이는 면세점에서 사 온 담배를 진즉 다 피운 다음이라 꼭 크로아티아에서 멘솔 담배를 사야겠다며 여러 블로그들을 찾아보고 왔다.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몇 군데의 담배가게를 들렀으나 크로아티아도 멘솔 담배가 금지였다. 제렁이는 슬퍼하며 민트 향만 솔솔 나는 담배를 한 갑 사서 피웠다.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어서 오전에 이미 몇 시간을 걸은 우리는 거의 기절할 것 같았다. 내가 지도를 살짝 잘못 봐서 약간 돌아갔는데 무서웠을 정도. 


햄버거 집에 도착해서 고민할 것도 없이 나란히 트러플 버거와 감자튀김을 시키고, 탄산음료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이프로 같은 맛이 나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유명한 집이랬는데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부엌에서는 계속해서 고기 패티를 굽는 냄새가 났고 음악이 아주 크게 나오고 있었다. 

감자튀김 위에 트러플 마요네즈와 얇고 네모난 파르메잔 치즈가 소복이 올라간 트러플 감자튀김은 진짜 맛있었다. 햄버거는 그저 그럼. 패티와 루꼴라, 브리 치즈가 들어 있었는데 치즈 향이 강해서인지 트러플 향은 잘 모르겠고, 피클이나 토마토, 하다못해 양파라도 들어있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트러플 제품을 싸게 판다고 해서 근처 마트에 들렀는데 생각보다 상품이 없었다. 초콜릿이나 살까 하다가 언뜻 초코하임과 굉장히 비슷해 보이는 과자가 있어서 당장 집어 왔다. 남들 다 트러플 쟁여갈 때 초코하임 챙기는 나 제법 웃기다. 

공원에 앉아 먹어보니 초코하임보다는 통크에 가까웠는데 너무너무 달아서 체크아웃할 때 숙소에 두고 나왔다. 심지어 양도 엄청나게 많았다. 


밥을 다 먹고도 해가 지지 않아서 올드타운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특별히 멋진 곳이라기보다는 저녁에 나와 밥 먹기 좋은 식당들이 즐비한 곳. 자그레브 대성당까지 들린 다음 게스트 하우스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길은 부다페스트에서 처음 지내던 동네와 굉장히 비슷했다. 


숙소 바로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고 분위기도 좋아 보이는 비스트로 겸 바가 있었다. 하지만 목구멍까지 트러플이 가득했기 때문에 감히 방에서 기어나가 무언가를 더 즐기려는 엄두는 나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 씻고, 핸드폰을 좀 하다가 내일 또 일찍부터 리예카로 떠나기 위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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