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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롭게 Jul 15. 2021

어찌할 줄 몰랐던 스폰서의 존재

'앉았다 일어났다' 사건 이후 언니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어딜 가든 붙어 다녔다. 언니가 하는 모든 것을 동경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자매지간이 되었다. 언니는 학창 시절 대부분 삐딱선을 탔고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 하지만 유독 내게는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항상 챙겨주었다. 그런 언니가 좋았고, 언니와의 관계가 소중했다. 그래서였을까. 언니에게 스폰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스폰서라는 개념 자체도 생소했다. 다양하게 쓰일 수 있겠지만 언니가 말하는 쪽에서는 '물주' 같은 느낌이었다. 언니의 '물주'는 재력이 상당했다. 아내와 자녀가 있었다. 고급 차량 서너 대는 우습게 몰고 다니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 딱히 일을 하지는 않는 듯했다. 가지고 있는 건물들로 자산을 굴린다고 했다. 


언니는 비슷한 '물주'를 둔 다른 이들과 본인은 다르다고 했다. 본인 표현으로는 '앵기지 않고 깔끔한 편'이란다.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잠자코 들었다. '물주'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언니는 수중에 현금 200만 원이 생겼다. 한 달에 서너 번은 물주와 약속을 잡았다. 언니는 부모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실제로 일도 했다. 그럼 한 달에 약 천만 원에 돈을 버는 셈이었다. 그 돈은 모두 치장하는데 쓰였다. 아, 모두는 아니구나.


언닌 그 돈으로 내게 많이 '베풀었다'. 맛난 것도 사주고 선물도 줬다. 언니와 노는 게 좋으면서도 뭔가 공범이 된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여전히 언니를 사랑했지만, 우리의 관계가 점점 예전 같을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난 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당장 그만두라고, 엄마 아빠한테 알리겠다고, 이건 그 누구보다 언니 스스로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종종 묻는다. 난 왜 늘 듣기만 했던 걸까. 뭐가 두려웠던 걸까. 우리의 관계에 금이 갈까 봐? 차라리 금이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십 대 내내 스폰서를 끼고 살았던 언니였다. 나와의 관계는 깨질지언정 언니가 본인의 청춘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면 오히려 그게 더 나은 선택이지 않았을까. 이 고민은 언니와 내가 각자의 가정을 꾸려 독립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 '물주'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약간 그런 게 있긴 했다. 이게 언니와 나만의 문제로 남겨두면 평화로울 것 같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건 공포였다. 부모님이 무너지실 것 같았다. 평생을 우리 삼 남매를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신 분들이다. 아무리 언니의 선택이었다지만, 그 선택으로 당신들의 인생까지 깎아내리실까 봐 무서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다르게 행동했을지 의문이다.





차분히 내 얘기가 끝나길 기다리던 
상담사가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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