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만에 쇼부나는 결혼 상대자
"난 할 거 다 하고 아주 늦게 결혼하거나 아예 안 할 것 같아."
그러면 꼭 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제일 먼저 가더라." 참 신기하다, 그들의 말대로 난 서른도 되기 전에 결혼을 했다. 그것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초스피드로 결혼을 해치워버렸다. 굉장히 간소하게 식을 올렸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랄 게 딱히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심지어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대관했던 레스토랑은 현재 망하고 없다.
남편 : 결혼은 어디서 할까?
나 : 삼청동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하는 거 어때?
남편 : 좋아!
(삼청동 이동 - 맘에 드는 레스토랑 입장)
나 : 저희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는데 시간당 대관비가 얼만가요?
점주 : 몇 분 오시는데요?
우리 : 아....(아직 정하지 않음)
이런 식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혀가며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더해나갔다. 내가 정말로 아끼는 이들만 초대했고, 드레스는 해외 직구로 구매한 후 리폼했다. 결혼식 전날엔 피부관리 대신 가장 친한 친구들과 레스토랑을 함께 꾸몄다. 테이블 위에 놓일 소중한 이들의 명패를 일일이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파란 장미와 그에 맞는 꽃병을 위해 고속터미널 꽃시장을 들락거렸다.
식순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가 부모님의 축사를 넣고, 귀한 발걸음 해주신 하객들을 위해 경품 추첨 코너도 마련했다. 남편 쪽 친지분들을 위해 영어와 한국어 둘 다 잘하는 지인 두 명을 사회자로 섭외하고, 결혼식 내내 빔프로젝터로 영어 자막을 띄웠다. 하객의 3분의 1 정도가 맡은 역할(?)이 있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결혼식 진행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을 위한 서프라이즈로 나는 결혼식 당일까지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레스토랑에 신부대기실 같은 게 있을 리 없었으므로, 나는 결혼식이 시작될 때까지 근처 커피숍에 숨어(?) 있었다. 커피숍을 오가는 손님들이 흘긋흘긋 하며 지나갔다. 내 앞엔 아빠가 앉아있었다. 연락이 오면 바로 나를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함께 가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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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쉴 새 없이 떠들고 계셨지만 뭐라고 하셨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긴장한 나를 풀어주시려고 했던 아빠의 마음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난 말 그대로 달달달 떨고 있었는데, 아빠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위안이 되었다. 연락이 왔고 우린 일어났다. 지금도 종종 커피숍에서 레스토랑까지 아빠 손 잡고 걸어가던 5분 남짓의 시간이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는 지나가는 행인 말고는 아무도 없는 거리를 온 세상이 보고 있는 것처럼 진지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레스토랑 창가에서 우리가 나타나기만을 대기하고 있던 사진작가님이 아빠와 나를 카메라에 담아주셨다. 그 사진은 두고두고 꺼내보는 내 인생 샷 중 하나다.
남편은 두 번, 나는 세 번이었다. 서로를 결혼상대로 직감한 데이트 횟수 말이다. 하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확신에 찬 감정이 굉장히 낯설었다. 이게 맞는 건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지 않을까 의심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흥분되면서도 두려웠다. 남편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면서 동시에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남편만큼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이 사람이구나, 싶었다. 내 마음 안에 강한 욕구가 일었다.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