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면 유독 무거운 단어들이 있다. 도저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입 밖으로 내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는 단어들. 내뱉는다고 세상이 끝나버리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붙들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내겐 이별을 고하는 말들이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니, 참으로 싱겁고 허무하다. 한 사람과 쌓아온 관계 속에 얽혀있는 무수한 단어들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이다. 잘려버린 단어의 조각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걸까.
지혼(纸婚)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 1주년을 나타내는 말이다. 김지윤 소장은 한 영상에서 이 단어를 빌려 결혼 1년 차는 종잇장처럼 가볍고 찢어지기 쉬운 관계라고 설명했다.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신혼을 떠올릴 때 달달한 모습만 봐선 안된다.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타오르는 때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많은 부분이 서투른 때이기도 하다. 지혼과 이혼의 사이가 그렇게 가까울 줄 몰랐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가슴 한 켠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가 올렸던 스몰웨딩의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우리가 초대하고 싶은 분들만 하객으로 모셨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대 50명이라는 인원수 제한까지 있어서 더욱 신중하게 하객 리스트를 추려야 했다. 우리가 정말로 아끼는 이들이 모인 자리였던 만큼, 그들에게 남편과 나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인정받았던 뜻깊은 자리였다. 그들이 숨죽여 지켜보던 가운데 우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서로에게 결혼서약서를 읊어주었다. 그 후 이혼이라는 단어를 목구멍에 걸어놓을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라 죄책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그동안 이혼이 가져다주는 이미지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했길래 사회가 대부분의 구성원에게 이 단어의 살을 그토록 찌울 수 있었는지... 정작 현실에선 목구멍으로 삐져나오려고 하는 이혼 얘기를 참으면서 당사자만 별의별 감정을 다 겪는데 말이다. 절망, 실망, 좌절, 분노, 두려움, 불안, 수치심 등등... 실로 한 단어가 가져다주는 감정이 정말 많다. 난 지금은 마음이 참 편하지만 말이다. 이혼했냐고? 아직은 아니다. 다만 지혼과 이혼이 가깝다는 걸 인정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