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비싼 나무로 제대로 만들어보자
가구용 나무도 재질에 따라 가격과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저렴한 소나무부터 중저가의 오리나무, 고급 가구에 쓰이는 오크와 월넛 등이 있다. 가격이 비싼 나무로 만든다고 모두 좋은 가구는 아니지만, 일단 좋은 나무로 만들면 보기도 좋고 만들 때도 좀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어차피 수제가구 만들 때 들어가는 노력은 같은데, 결과물은 나무 종류에 따라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가구를 만들고 나면, 기왕에 만들 거 좀 더 좋은 나무를 쓸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목공을 배운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지금껏 소나무와 오리나무만을 이용해 가구를 만들었다. 어차피 내 실력에 이 정도 나무면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고, 만들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일단 가구를 만들면 실수는 있어도 어떻게든 가구는 완성이 되었다. 이제는 자신감도 조금 생기면서, 언젠가는 언젠가는 고급 수종의 나무로 제대로 된 가구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만들 가구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젠 집안 대부분의 공간은 내가 만든 가구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겉은 멀쩡해서 교체할 생각은 하지 못한 레인지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남은 MDF 소재(톱밥을 접착제로 뭉쳐서 만든 저렴한 가구 재질)의 싸구려 가구이기도 했다. '그래, 이놈을 교체할 멋진 그릇장을 만들어보자'.
즉시 설계에 들어갔다. 재질은 레드오크 원목으로 결정했다. 아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방에 자리 잡고 있는 가구이기 때문에, 아내가 이 가구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으면 했다. 참고가 될만한 가구들을 살펴본 후 최종 디자인을 결정했다. 바닥 다리는 청소기가 충분히 들어갈 만큼 높게 달아 주었다. 자주 쓰지 않는 에어프라이어기와 믹서기는 수납했다가 손쉽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도록 레일을 달아 수납했다. 잡다한 주방용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서랍 6개를 만들어 넣었다. 자주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는 아예 밖으로 꺼내어 키높이에 맞추어 배치하였고, 멀티탭은 가구에 매립하여 가구와 한 몸처럼 보이게 하였다. 상부는 헤펠레 호차를 써서 미닫이로 만들었다. 유리는 레트로 느낌이 나는 유리를 적용하여 70~80년대 그릇장 느낌이 나도록 했다. 예전에 구매해 놓은 청동 손잡이를 미닫이 문짝에 달려고 하였으나, 예전에 친한 친구 녀석이 그 문고리가 가구와 안 어울린다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가구와 동일한 오크로 손잡이를 만들어서 달았다.
제일 힘든 작업이 유리를 고정시키는 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유리 고정용 틀을 일일이 만들어서 끼워주었다. 유리를 보호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구와 동일한 나무로 유리틀을 만들어 달았다. 마무리는 아오로 천연 오일을 발라주었다. 가구를 만들면서 가장 기대되고 설레는 순간이 오일을 발라줄 때이다. 오일을 바르면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가구 본연의 색상이 발현되고, 그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오래된 레인지 장을 버리고, 오크 그릇장을 가져다 놓으니, 거실이 정돈되고 한층 고급스러워진 느낌이다. 의도했던 대로 아내는 거실에서 이 그릇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지금은 상부 수납장을 술보관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나도 주방의 그릇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냥 이유 없이 그릇장을 쓱 문지르곤 한다. 역시 가구는 좋은 나무로 만들어야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