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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리터리맘 Jan 25. 2021

불안은 성장을 데리고 다닌다

(기대는 실망을 데리고 다니고)

불안과 분노의 고통이 지나간 뒤의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껴보신 적 있나요? 결혼 후 여태껏 하루도 걱정거리가 없었던 날이 없었던 나에게 최근 1년간은 불안하리만큼 걱정거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건 걱정거리 없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나를 시샘이나 한 듯이 상상치도 못한 고약한 일이 생겼어요. 물론 당시에는 분노에 가득 차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세상 모든 사람이 돌아서면 제 등을 칼을 꽂을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얼마나 트라우마가 컸는지 상상이 가시죠? 그런데 시간이 약이다는 진리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 시간이 지나니 차츰 안정감을 찾게 되더라고요. 기억 속에서 잊힌 건지, 정리가 된 건지, 아님 고통에 익숙해진 건지 모르지만 문득문득 생각날 때는 힘들어도 살 만은 했어요. 나중에는 ‘이런 일이 있으려고 불안했었나’ 라며 당분간은 조용하겠네 하며 스스로를 위안 삼고 있는 거예요. 이건 무슨 심리일까요. 


지속된 고통이 장기간 반복되면서 학습이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용히 아무 일 없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가 봐요. 결혼생활과 양육을 하면서 속으로는 지금처럼 평온한 시간이 올 것이라고 기대를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대는 실망을 데리고 다니거든요.  


자녀양육을 위해 시부모님과 10여 년을 같이 살면서 신데렐라병에 걸린 제가 평범하지 않은 부모님에 의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요. 신데렐라병 일명 착한 사람병인데요 어른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말해요. 이상하게 나는 어른과 맞서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몰라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서운 엄마의 훈육으로 생겨난 건 아닌가 싶지만 정확한 이유는  몰라요. 그래서 부모님께서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해도 그냥 참았어요. 그러면서 내가 일관성 있게 진심으로 대하면 저분들도 변하겠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기대를 하면서요. 그런데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이 자기만 아는 부모님들과의 생활에서 너무나 지쳐버린 나는 탈출을 시도했어요. 기대감이 실망이 되면서 모든 걸 놓아버린 거예요. 왜냐하면 나도 살아야 하니까. 


그동안의 인내가 내게 남긴 건 화병과 위장병, 폐결핵, 갑상선 결절이었으니까요.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 아시죠. 저는 그 말을 맹신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시골에서 유기농만 먹고 자라서 건강에는 자신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긴 긴 마음고생을 하면서 마음의 병이 생기니 몸이 대신 표현을 하더군요. 그래서 진심으로 살기 위해 탈출한 거예요.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맹신하게 되었죠. 


지금은 어떠냐고요? 시댁 탈출에 성공하면서 친정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죠. 물론 애들 때문에요. 친정엄마와 살면 다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또 다른 친정살이가 시작되었어요. 울 엄마 엄청 무서운 분이라고 얘기했잖아요. 그 성격 어디 가겠어요?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와서 살았고 저도 엄마가 되어 다시 시작한 엄마의 동거가 쉽지는 않았어요.  어릴 때 보이지 않던 엄마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처음 1년은 엄마의 짜증을 견디기가 힘들어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저의 인생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시기 시작하셨어요. 제가 직장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시집살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시면서 대쪽 같은 성격을 조금씩 감추시고 저를 대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친정엄마와의 동거에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너무 편안했어요. 자녀 걱정도, 직장 걱정도 없고, 항상 안타깝던 친정엄마도 곁에서 챙겨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내가 이렇게 마음이 편해도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남동생이 사고를 쳤어요. 전력이 있는 놈이라 항상 조마조마했는데 또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의 속을 뒤집어 놓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그럼 그렇지. 왜 이렇게 조용한 가 했어라는 생각과 함께 급한 것 먼저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되어 갈 때쯤 

폭풍이 지나갔으니 당분간은 조용할 거야라는 안도감. 


뭐가 먼저인지 나중인지 모르겠지만 불안과 안도는 세트인 거 같아요. 아니 꼭 세트여야만 해요. 불안 뒤에 안도가 오지 않으면 단절이라는 나쁜 결과를 데리고 올 수 있잖아요. 그래서 삶 속에 항상 있는 불안과 고통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가면서 사는 게 인생인 것 같아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저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져 가는 느낌이 들어요. 어지간한 일에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을 강단과 자신감이 생겼으니까요. 시간이 흘러 그 시간을 추억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곧 성공을 의미한다는 것.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로하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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