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모를 권태와 우울감의 이유)
몇날 몇일 밤낮이 바뀐 탓인지, 생체리듬의 변화로 인한 피로감인지 원인 모를 권태로움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한참동안 꿈꿔왔던 책 출간의 꿈을 이루어낸 뒤에 오는 약간의 허탈감일까? 아니면 장기간 야간훈련을 하면서 햇빛을 못 본 탓일까? 아니면 걱정이 극심했던 훈련준비로 긴장을 많이 했던 탓에 성공적으로 끝낸 뒤 찾아오는 안도감에서 오는 피로감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이들을 장시간 보지 못한 데서 오는 외로움일까?..
이유를 찾으려 생각해 보니 이유라고 할 만한 것들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심리상태여서 인지 글도 써서 뭐하나 하는 허탈감마저 생긴다. 뭐랄까..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하는 등의 근원적인 질문까지 던지면서 말이다.
브런치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누가 읽어 주지 않는 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던 내게 시시때때로 조회수를 확인하는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부족하고 재능도 없는 나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대해 행복감과 자부심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브런치에 담겨진 많은 사람들의 잘쓴 글을 보면서 나의 재능없음을 깨닫고 상대적으로 위축이 되었다. 나는 지금껏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좀 특별한 인생을 산다고 자부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보잘것 없는 인생을 책에 담아보겠다는 용기가 생겼던 것 아닐까.
하지만 책을 세상에 내어 놓고 다시 돌아보니 별로 특별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멋있게 때로는 처절하게 각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고, 그 삶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삶속에서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같은 주제를 두고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생각하는 흐름이 다르다. 하지만 좀 더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나이들어가는가 보다 싶다.
아마도 그런 나의 생각이 지금 내가 좀 우울한 이유일까 싶다. 나는 군대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정도의 적은 인원일 시절부터 생활하면서 항상 주목받아 왔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던 적도 있었고 전역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긴 시간을 버텨오면서 길들여진 탓일까? 지금은 어디에 있든 존재감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본적인 소임을 떠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남자들은 여자와 엄마의 고충을 모른다 등등.. 나의 힘들었던 과거를 알아주길 바라고 그 시절을 견뎌온 위대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칭송해 주길 바라는 심리인걸까.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에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항상 잘한다,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온 탓일 것이다. 이제는 나 하나의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예전과 달라졌다. 주변에 많은 여군들이 있다. 압박감에서 벗어나 평범한 나의 일상을 살아가도 될 때도 되었다.
환경은 변하였지만 내가 적응을 못하는 것이리라. 이제는 나도 자유로워지려 한다. 꼭 잘해야할 필요는 없다. 최선을 다하되 최고가 되는 것은 나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소수이기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주목과 관심이 불러온 인생의 긴장감에서 해방되려 한다. 이제는 좀 내려놓고 주목받지 않아도, 오히려 주목받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지금은 그럴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