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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진단

부지런하면서도 게으른 삶


“희윤이는 뭘 좋아해?” 질문하자 아이는 금세 고개를 돌려 시선을 자기 엄마에게로 향한다. “우리 아이는요, 국어보다는 수학을 좋아하는데, 기하보다는 수열 파트를 좋아해요.” 아이는 침묵을 유지하는데, 이때마다 드는 생각.


“정말 좋아할까”.


낯선 어른 앞에서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한국 사회 정서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창 자기 마음대로 생각을 표출하고 표현하며 살아야 할 나이에 무언가에 억눌려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슬프다.


아이와 일대일로 면담을 해보면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이의 자아를 어머님의 열심이 가로막은 경우다. 면담 요청이 올 때 항상 아이와 먼저 이야기한 후에 어머니를 만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물론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시는 어머니들도 많이 봤다.


좋아하는 것은 꼭 과목이 아니어도 된다. 오히려 과목으로 답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 세상은 국영수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니까.


혼자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있을 수 있고, 화려한 것들이 싫어 허름한 것들, 예컨대 무너져가는 상가와 같은 대상을 스케치북에 담아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있을 수 있으며, 요 근래 탈북자 인터뷰 영상을 보며 탈북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을 수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코딩을 해서 핵맨 같은 게임을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한 친구가 있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각기 자기만의 기질과 특수한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자 위대한 힘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 지구 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고 우리 내면의 쏘울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물론 학교 교실마다 벽에 걸려있는 시간표에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가 서로 순서만 바꿔가며 빼곡히 격자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 격자 대로 정의되는 곳이 아니며 내 안의 유니크 (unique) 한 나를 잘 찾은 학생은 이 교과목의 소리가 아닌 나 스스로의 소리에 경청하고 용기 있게 살아본 학생이다.


여담이지만 이렇기에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인성도 좋다는 믿음은 어디서 생긴 논리인지 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또한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되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나의 어릴 적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았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대세를 따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남들 다 하니까 나도 따라 했던 것들이 너무도 많다. 친구들을 보니 방학 때는 계절 학기를 들으니까 나도 별 생각 없이 그래야 하나보다 하며 따라 들었고, 군대도 다 2학년 마치고 가니까 나도 그때 덩달아 갔었고, 생활비는 과외로 버니까 나도 과외를 했었다. 동료들이 학점에 목숨을 걸길래 나도 함께 학점에 목을 맸다.


매우 부지런했으나, 동시에 매우 게으른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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