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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노운 Jun 16. 2022

취미가 갖고 싶은 사람

취미를 갖고 싶어서 노력해왔다. 점토를 사 가지고 와서 만들어보고, 퍼즐을 해보고, 게임도 해보고,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그림도 그려보고, 물감으로 붓칠도 해보고, 페인트칠도 해보고, 피아노도 쳐보고, 연극도 보러 가고, 영화도 보고, 드립 커피 도구를 사서 커피도 만들어보고, 반찬도 만들고, 책도 읽어보고, 글도 써보고, 공방 찾아가서 향수도 제조해보고, 가죽지갑도 만들어보고, 초콜릿도 만들어보고, 화초도 심어보고, 등산도 해보고, 포켓볼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수영도 해보고...... 나도 무언가에 미쳐보고 싶어서 나름 노력해봤다. 어떤 것을 하다 보면 훅 끌리는 것이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취미 없는 사람이다.


어느 순간 취미 찾기를 포기했다. 느끼는 바 나는 귀차니즘이 굉장히 심한 사람이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내 몸을 움직이는 재미난 취미 찾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지금 생활에 남겨진 것들을 취미로 생각할까 싶은데, 그것들은 나의 성장 욕구로 인해서 늘지는 않아도 끊임없이 내가 하고 있는 일상 같은 것들이다.


먼저 요리이다. 간단히 때우는 걸 싫어한다. 한 번을 먹어도 잘 먹기를 원해서, 밖에서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로 끼니를 때운 날이면 '아 내 몸에 좋지 않은 행동을 했어. 집에 가서 반찬 꺼내서 골고루 영양 섭취해줘야지.'라고 할 정도이다. <만개의 레시피>라는 요리법이 간편하게 정리되어 있는 어플이 있다. 거기에는 메인 반찬, 반찬, 국, 디저트 등 요리의 종류로 목록이 나눠져 있기도 하고, 또는 상황별, 재료별로도 요리법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내가 어떤 것을 만들고 싶은지'만 생각한다면 목록을 찾아 들어가서 다양한 요리들을 살펴본 후 꽂히는 걸 만들면 된다. 요리 재료들이나 방법들이 아주 간단하게 적혀 있고, 요리 순서도 거의 5번을 넘지 않은 것 같다. 취미라고 하기엔 즐겨하진 않지만, 가끔 해 먹고 싶을 때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또 재료들을 깎고 잘 썰고 볶고, 또는 끓이고, 갖가지 향신료들로 간을 맞추는 과정이 집중하게 돼서 좋다.


다음은 영어이다. 영어는 정말 취미가 아니다. 아닌데, 이놈의 영어는 죽어서도 나를 따라올 것 같이 괴롭힌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나왔지만 영어를 못하는데 다들 학교 얘기만 하면 영어는 무조건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아니야 못해"라고 대응해왔지만, "너 기준에서 못하는 거겠지"라고 답변을 받아왔다. 하지만 영어 잘하는 것을 보여주려면 대화를 잘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영어가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 한다. 그러다 보니 포기할래도 정말 죽을 때까지 따라올 것 같아서 놓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봐도 웬만하면 미국이나 영국 영화를 보려고 하고, CF나 드라마에 영어 대사가 나오면 무슨 말이지 하고 쫑긋 들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Good", "I sorry." "Oh my god" 등 감탄사를 많이 한다. 요즘에는 시간을 내서 미드 보기와 영어학습지를 시작했다. 취미는 아닌데 미운 애착 인형이랄까.


이다음은 사진 찍기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보고 감명받은 대사가 있었다.


-언제 찍을 거예요?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개인적으로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에 머물고 싶지.

-그 순간에 머문다고요?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그 멋진 대사에 감동하여, 너무너무 아름다운 순간에는 나도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만 본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 나는 사진작가는 안 되겠다. 이런 순간은 나만 간직하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이니까.'라고 오글거리게 감상한다. 그러나 정점의 순간 말고 사진 찍어서 남기는 것을 참 좋아한다. 새들이 감을 쪼고 있는 것, 진열된 논의 연둣빛 평야, 사랑하는 사람의 귀여운 모습, 오늘 먹은 맛있는 음식, 해 질 녘의 스산한 분위기 등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항상 이 사진들을 어떻게 해야 내가 온전히 다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한다.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는데, 컴퓨터의 버전이 점점 더 높아지면 못 볼까 봐 걱정이다. 그래서 추리고 추려서 인화를 할까도 고민해 봤는데 엄두가 안 난다.


앞으로도 취미 찾기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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