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돌이 한 참 빠져 있는 초2의 문턱 앞에 서 있는 지아, 르세라핌과 아이브의 춤을 유튜브로 보고 따라 배우는 중이다.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 부쩍 함께 아이돌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때는 다 그랬으니까, 싶은 마음에 집에서 잼의 ‘난 멈추지 않는다’, 영턱스 클럽의 ‘정’ 그리고 HOT의 ‘캔디’를 연습하던 그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 앞 레코드 가게에서 가수들의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친구들과 들락날락 거리며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기다리며 브로마이드까지 꼼꼼히 챙겨 오던 그런 날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열심히 사서 듣고 모으던 어느 날 부모님이 출장을 다녀오시고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손에 쥐여 주었다. 뭐가 달랐지? 뭐가 달랐을까? 테이프가 감다가 엉켜 뚜껑을 열고나면 얇은 갈색 테이프가 쭉 밀려 나오지 않는 모습? 잘 모르겠지만 왜 마이마이라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에서 cd플레이어로 다들 바꿔서 사용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집에 넘쳐 나는 엘피판을 보면서 그것의 축소판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부터 주위를 둘러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소니나 파나소닉의 cd플레이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등굣길 가방 안에서 내 걸음에 맞춰서 툭툭 튀어 음이 끊기는 것마저 불편한 줄 모르고 음악을 즐겨 듣던 그런 날이 있었다.
그리고 mp3를 활용하면서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고 드라마까지 다운로드하며 아이팟 클래식에 정착하며 지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화면으로 일드를 자장 해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던 것 같다. 휴대폰에 반의반 정도의 크기로 자막까지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참 많은 변화 속에 살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은 휴대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실시간으로 음원차트를 플레이할 수 있는 앱들도 많고 유튜브만으로도 음악과 영화, 드라마를 볼 수 있다. 테이프가 닳고 닳아 음악이 늘어지면 냉장고 속에 넣어두고 한참을 기다리거나 음악을 저장하는 수고도 없이 언제나 좋은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꼰대 같은 생각을 해본다.
지아와 단둘이 서울 데이트에 나선 그날, 가장 하고 싶은 건 역시나 아이돌의 앨범을 사는 일이었다. 교보문고에 들어서 르세라핌의 앨범을 들고는 한참 구경을 했다. 오고 가는 외국인들과 어린 친구들을 보며 k-pop을 실감할 수 있었다. cd처럼 생긴 키 링을 보면서 이건 뭐가 싶어 봤더니 가격표에 17000원이 붙어있다.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 금액을 주고 누가 이런 걸 사나 싶었는데 줄 서서 사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 관경이 새롭고 신기해서 옛 기억을 떠올리던 찰나에 지아는 여자아이들의 앨범까지 들고 와 계산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휴대폰에 앱을 받고 그 cd 모양의 앨범 키 링을 올려두면 노래가 나온다는 신기한 사실을 알았다.
근처 카페에 들러 앨범을 열어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앨범의 수준이 아니었다. 덩그러니 cd와 가사집만 있던 그 시대는 지났나 보다. 이건 거의 화보집 수준이다. 예쁘게 찍어 낸 사진들 사이에 스티커와 포토까지 빼곡히 지불 한 금액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 모습이 새롭기만 했다. 왜 한 가수 앨범이 이렇게 색깔별로 많은가 했더니 그 안에 있는 포토 카드의 인물이 다른 것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옛날에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5명의 멤버들의 얼굴도 다 똑같이 생겼다고 말하던 모습이 부쩍 이해가 된다.
앨범은 꺼내 보지도 않고 사진에 심취해 있는 딸에게 “참 안 됐다. 우리 때는 cd플레이어 가지고 딱 나와서 앨범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딱 들어보고 그랬는데!”라는 말을 꺼내자 “그게 뭐야?” cd로 노래를 듣는 세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앨범은 그냥 소장용이고 노래는 유튜브로 들으면 된다나, 그런 말을 듣고 있으니 웃음이 난다. cd플레이어가 그리워 검색해 보았다. 옛날에 쓰던 휴대용 플레이어는 없는 것 같다. 뭔가 그리워진다. 그때의 그 감성이.
나도 며칠 뒤 주문했던 Snow Man의 앨범 두 개가 도착했다. 앨범을 열어 보는데 가사집 안에 단체 사진 한 장 덩그러니 있고 한 장의 cd뿐이다. 또 추억이 피어오른다. “이게 진정한 앨범이지!” 지아에게 앨범을 자랑했더니 사진도 없고 왜 아무것도 없냐며 이야 해 한다. ”옛날에는 진짜 이렇게만 팔았어. 이게 전부였다니까! “ 앨범 두 장 덕분에 옛 감성에 취해 동네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드디어 앨범이 왔는데 플레이어가 없어 듣지를 못한다고 하자 은숙 언니가 전에 빌려준 플레이어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라디오만 듣다가 쓸 일이 없어 보관만 하던 플레이어를 언니가 영어 공부할 때 쓴다기에 당당히 줘버렸는데 요즘은 안 쓴다며 결국 다시 나에게 돌려줬다. 받아 들자마자 앨범을 꺼내 플레이어를 눌렀다. 몇 개 없는 버튼도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버벅거리며 누른 끝에 휘휘 cd가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앨범의 첫 곡이 흘러나왔다. 기분이 새로웠다. 슥슥 꺼리며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소리도 따닥 소리를 내며 눌리는 아날로그 느낌의 버튼들도, 문뜩 옛날 학교 책상에 올려두고 이어폰 사이로 들리던 소리들이 어렴풋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던 cd 앨범들도 결국 다 버렸는데 그 기억이 조금씩 나를 흔들며 ’ 그때 왜 버렸어...‘라는 생각으로 나를 따갑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때가 부쩍 그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