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몸담고 있던 독서모임이 있었습니다. 매주 한 권을 정해 각자 읽고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는 형태의 독서모임이었지요. 독서모임을 하면서 일부러라도 책을 가까이하게 되어 좋았고, 똑같은 책에 대해서도 모두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걸 토론해가는 과정에서 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니 이해하기 싫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어보는 시간 자체가 자기만의 편협한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신나고 즐겁게 1년 넘게 해오던 모임을 해왔는데, 어느 순간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1주일에 한 권의 책은 너무 많았어요. 어느 순간 자신이 발제를 맞은 책이 아닌 이상 아무도 읽어오지 않게 되었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을 읽고 그 자리에서 발제만을 듣고 하는 토론이라, 그것은 인상비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소중한 시간에 모여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의 잘 알지는 개념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스스로가 떠들고, 남들이 떠드는 것을 듣다보면, 처음에는 책을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교양인이라는 으쓱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겉만 핥고 있는 듯해서 오히려 더욱 허기지는 마음과 내가 지금 뭐하는 있는 짓인가 하는 생각에 허무해지기 일쑤였지요. 1주일에 한 권의 책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라면 2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 모이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안 읽는 사람이 읽는 사람이 되진 않더라고요...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둘째, 책이 너무 어려웠어요. 평소 지식이 짧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고 해도 지식의 공백이 메꿔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모두다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독서모임을 하는 것이다보니 책 한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기 일쑤. 무언가 책을 읽은 것 같기는 한데 무엇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총체적으로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은 읽었다(?)는 알 수 없는 만족감만으로 계속 모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더 무식했고, 인문학의 전반적인 이해도가 심히 떨어진다고 느끼는 나날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깊이 제대로 한줄한줄 이해해나가는 독서가 필요했던 것이였죠.
셋째, 배움의 열의는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썼는데 그러다보니 모임에 자주 나오지 않고 펑크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돈을 내거나 모임을 주도하는 누군가가 있는 모임이 아니다보니 더 열심히 읽고 싶고 더 치열하게 토론하고 싶은 사람은 왠지 모르게 민폐(?) 끼치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토론에 조금 열을 올릴라치면, 왜이래, 부담스럽게. 뭐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누구도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저 혼자 왠지 모를 갈증에 시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정말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지요. 마음의 양식이 충족되지 않으니 언제나 지적 갈증에 시달렸고 항상 배가 고팠습니다.
그 와중에 독서모임에서 만난 다른 멤버가 말했습니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혼자 읽으면 잘 이해가 안 될 것 같고, 한 글자 한 글자 낭독을 하면서 같이 읽으면 어떨까요?"
"낭독이요?"
"혼자 읽기보다 같이 읽을 때, 눈으로 읽기보다 몸으로 읽을 때 즉 낭독할 때, 까다로운 책도 잘 씹어서 소화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같이 읽어볼까요?"
2016년 10월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