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벽돌책깨기 Apr 13. 2021

죽은 경제학자 불러다 이야기 듣기(8)

제8장 자신이 친 제도의 그물에 걸려든 베블런과 갤브레이스


참석자: H, Y, K (J님은 은사님을 돕느라 몇 주간 아쉬운 결석)

명품 가방은 가격을 인하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팔 때 잘 팔린다.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Leisure class)”에서 어떤 재화의 가격이 낮아지면 수요가 증가한다는 수요공급이론의 일반론이 설명할 수 없는 이런 현상을 개념화하여 경제학 교과서에 이름을 남겼다. 대학의 경제학 수업에서 ‘배부른 계층’의 ‘베블런 효과’로 외운 기억이 난다.

갤브레이스는 베블런의 제자로, 애덤 스미스의 완전경쟁이나 마셜류의 경쟁 이론은 동화 속에나 나올 비현실적인 지적인 무능함이라고, 그들은 제너럴 모터스 같은 거대 기업들의 막강한 힘을 부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개인의 경제적 선택은 기업의 광고 등에 의존하게 될 뿐이라며, 기업 광고를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베블런과 갤브레이스는 제도학파 경제학자의 예시로 소개되었다. 제도학파 혹은 제도주의(institutionalism) 경제학자들은 이윤, 소득, 자본, 임금 같은 일반적인 경제적 범주들을 다루기보다는 사회의 법, 윤리, 그리고 제도 등에 관심의 초점을 둔다(p.344).

***************************************

K: 지난 시간에 Y가 마셜의 이론에 빈 틈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 8장에 그 빈틈을 지적한 학자(베블런과 갤브레이스)가 바로 나왔어요. Y님 예리해! 현실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질 수 없잖아요. 내 욕망이 나만의 욕망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생기는 것이죠.


H: 어려웠어요. 요약해보자면 구제도학파는 마셜의 ‘진공상태’와도 같은 비현실적 가정을 비판하면서 경제활동에서 사회, 문화, 윤리와 제도의 영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신제도학파 역시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마셜의 분석 도구 – 그래프, 가격, 수식 등등 -를 사용하면서 주장을 했다는 거죠?


Y: 그렇죠. 신제도학파는 경제활동의 법, 재산, 범죄 등을 경제학적 분석 도구를 통해 설명하려고 한 거죠. 그리고 실제로 상당부분이 그럴 법하게 설명이 되고요. 이들이 세상의 온갖 현상 – 공해, 범죄율, 인간의 선택 등등 – 을 경제학으로 전부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력하게 과시할 만하다 싶어요.


H: 맞아요. 마치 저자가 “니들이 경제학이 얼마나 중요한 지, 온 세상을 다 설명할 수 있는지 이제 알겠지??” 하고 뿌듯하면서 이 장을 끝낸 느낌이에요.


Y: 저는 이번 장이 매우 재미있었어요. (다같이 재미있다고 동의!) 책에서 몇 가지의 예만 들었을 뿐이지만 경제학의 도구로 설명이 가능한 일이 아주 많죠. 한동안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같은 책을 아주 좋아했어요. 아주 명쾌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H: 저는 이번 장에서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주제를 간략하게 다뤄야 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몇몇 주제들은 저자가 생략한 부분이 유독 많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면, 갤브레이스가 주장했던, “필요needs와 욕구want는 다르다”고 했을 때(p.366), 하이에크의 반박에 힘을 실어줬어요. “원시 시대에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욕구가 있었겠어? 지금 사람들이 당연히 필요로 하는 것들도 어차피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지. 갤브레이스가 말한, 공립학교 많이 세워서 신중하게 소비하고 공익에 더 지출하도록 시민들 교육하자는 주장도 어차피 하나의 광고 아니야?” 라는 비판은 어딘가 불편했어요.

갤브레이스는 의존효과dependence effect가 있다고, 즉 소비자들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기업의 광고나 선전에 따라 구매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필요는 우리 내부로부터 나오지만 욕구는 외부에서 올 수도 있으며, 필요가 욕구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체로 새로운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는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광고가 욕구를 새롭게 창출한 결과다. (p.366~7)


K: 음… 저는 정치도 하나의 광고라는 하이에크 말이 “맞는데?” 라고 생각했어요. (일동 웃음)


H: 저도 하이에크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해요. 내가 만년 전에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한다면 스마트폰이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없으면 단 하루 알바나 출근조차 할 수 없고 ‘필요’한 것이죠. 외부에서 창출된 ‘욕구’였던 것이 당연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요’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무적의 논리’처럼 모든 논의를 납작하게 입막음하는 것 같았어요. ‘인간이 내부에서 온 필요와 외부에서 온 욕구를 구분하는 게 가능하기나 해? 어떤 정치가든, 현자든, 기업이든 스피커(발언권)를 가진 자의 주장이 있다면 그것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사람들의 선택은 어차피 외부의 영향을 받으며 이뤄지는 게 당연하니 무엇이 더 근본적인지 아닌지 따지려고 들지 마‘하고 모든 비판을 원천봉쇄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갤브레이스가 비판했던 거대기업의 힘에 눌린 개인의 행동을, 하이에크는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으로 전부 환원하는 극단적인 상대화가 관련된 논의를 중단시키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자 부크홀츠가 광고의 순기능을 항변하고, 소비자들이 광고에 전적으로 휘둘리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 들었던 사례의 설명도 너무 단순한 설명이라 반대로 해석될 여지가 상당하다고 느꼈어요. 

미국에서 안경업자들에게 광고를 허용한 주들이 광고를 허용하지 않은 주들보다 오히려 25~30퍼센트 정도 낮은 가격으로 안경을 판매했다는 결과가 있다(p.371)

광고를 했기 때문에 가격이 반드시 오르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하지만 광고를 해서 금테안경과무테안경과 선글라스 등 욕구가 창출되어 전체 시장 즉 전체 판매되는 개수가 커지니 가격을 낮게 팔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행간을 비약하면서 광고의 순기능만을 옹호하는 거 같았어요.


Y: 책의 내용이 바로 그 뜻이라고 이해했어요. 제조업을 영위하는 기업이 제품이나 콘텐츠의 가치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아니고, 광고를 한다고 해서 가격을 올리지 않아요. 업계에서 형성된 시장가격에 맞춰서 가격을 책정하지, 광고비를 썼으니 바로 가격을 올리지는 않거든요(H: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광고비는 직접비가 아니니까). 광고를 하면서 가격도 올리지 못하는 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예요. 그래서 이 사례가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어요.


K: 광고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속한 업의 실존을 보여줘서 너무 공감이 됐어요. 하이에크가 말한 것처럼 광고를 포함해서 밖에서 들어오는 외부 자극 중에 내가 취사선택을 하며 살고 있고, 내 직업의 하는 일이 잠재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해서 판매하는 일이고요. 


H: 맞아요. 너무 현실과 맞는 말이라서, 저는 불편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모든 판매자가 내가 파는 물건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면서 거짓으로 파는 것도 아니고… (일동 “내가 파는 게 쓰레기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팔려고 할 때도 있죠!”) 맞아요. 저도 별로 힘 안 들여놓고 엄청 일 많이 한 척하면서 보수 받고 싶어하죠!


K: 자본주의에 일정한 악의 속성이 있고, 그것에 가담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죠. 


H: 하지만 8장 뒷부분에서 ‘시간지평time horizon’이라는 개념을 불러낸다면, 우리가 한번만 장사하고 말 것이 아니기에 신뢰를 얻는 경제행위를 하는 게 말이 되죠.


Y: 요즘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요, 내가 ‘시간지평’을 생각한다면 담배 안 피웠을 거 같아요. 미래를 염두에 둔다면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기 위해 끊었겠지만, “오늘만 산다”는 생각에 오늘의 스트레스가 너무 중요했어요. 범죄에 대한 경제학 연구 부분에서, 범죄자들이 (1) 검거율과 (2) 형량의 무게를 고려해서 결정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시간지평 개념 없이 그 순간의 만족을 위해 선택하는 것처럼 요.


K: 시간지평이 세계 2차대전이 독일에서 일어난 이유도 설명할 수 있어요. 독일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으로 막대한 전쟁배상금 부채를 졌고, 독일 국민들은 언제 어떻게 갚을 수 있을 지 가늠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래나 전망을 상실했어요. 그러니 내일이 없는 것처럼 하게 된 거죠.


H: 맞아요. 저도 취직하자마자 5천만원 빚을 지고 나니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어지고 우울에 빠져버린 적이 있어요.

***************

Y: 책에서 범죄의 경제학적 분석이 소개된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그 외에도 가사노동, 돌봄노동, 출생률 등 다양한 사회 현상에 경제학적 분석을 도입했어요. 제가 회사를 그만 두었던 시기에 게리 베커의 저서를 포함해서 경제학에 심취했어요. 주변의 압력과 상황 등등 어린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여성인 내가 일을 계속하기보다는 퇴사하고 남편이 경제활동을 계속하게 되었고,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한 내 선택이 합리적이라고 의미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요. 내가 더 수입이 많더라도 내가 계속 일을 한다면 나의 모든 수입은 육아 비용에 전부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이와의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도 없고 몸은 피곤하고 쉬지도 못할 테니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경제학의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었고 당시에는 내가 한 행동을 설명하는 틀이 되고 위안이 되었어요.

(K: 결국은 퇴사하고 훨씬 더 잘 됐지요! ^^) 내가 했던 것이 ‘합리화’가 아니라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10년이 흐르고 공부를 하면서 다시 게리 베커를 접하고 신기했어요. 이전에 돌봄노동이나 가사노동 같은 주제를 경제학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모든 사회현상을 계량적인 비용과 효용으로 분석한 그의 분석틀 자체가 매우 젠더 편향적이었어요. 이후 많은 여성주의 경제학자들이 논의를 확장했죠. 


……그런데 332쪽의 법률에서 효율성과 정의가 일치할 수도 있다는 부분부터 어렵고 길을 잃었어요. (다들 격하게 동의)


H: 저도 어려웠어요. 생각해봤는데, N번방 범죄자들이 거액의 범죄수익을 은닉한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분노와 부정의감을 ‘효율성’과 연관시켜보면, 경제학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allocation, 생산결과물을 누구에게 분배distribution가 아니라)’이 무너졌다고 보아 효율과 정의가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어렵네요.


K: 서양의 사법제도가 중세 마녀사냥에서 시작, 발달되었거든요.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공판주의’, ‘증거주의’ 같은 개념이 수많은 사람들(마녀로 지목된 본인이나 가족, 주변인을 처형하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등)의 억울한 희생이 쌓여 200년 이상 처절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어요. 극심한 마녀사냥은 사회 구성원의 시간지평을 파괴하고 누구도 안심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없게 했어요. 동양에서 단순히 서구 사법제도를 도입하며 ‘정의로운 거 같으니까’ 수용한 원칙들이지만, 실은 반드시 법정 안에서, 증거를 가지고만 판결을 다툴 수 있다는 원칙이 생긴 이유는 법정 밖에서 증거 없이 처벌하는 등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이런 사법의 원칙들을 다수에 적용해야, 사회의 시간지평을 복원할 수 있고, 효율성이 곧 정의에 가깝다는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용어의 의미가 너무 넓고 함축적이라 어렵네요.


Y: 이걸 보면서 리얼돌에 대한 논문(법철학자)을 읽고 화가 나서 페이퍼를 쓴 기억이 났어요. 그 논문은 효율성 측면에서 리얼돌 수입은 부정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격이 없는 물체이며, 사적 공간에서 사용되므로 외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정의’의 측면에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거죠. 그 논문에 나온 ‘효율성’이, 이 책이 말하는 사회적인 효율성과 정의의 관점인 것 같네요.


K: 개인의 효율성이 아니라 사회 전체 측면에서 효율성을 말하는 거네요?


Y: 그렇죠, 하지만 “실제 인격이 없으니까 괜찮다”는, 그들이 말하는 ‘사회’에 여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죠. 


H: 포르노를 찬성하는 논리와 비슷하네요. 출연한 여성도 대가를 받고 동의 하에 한 것이고, 남을 괴롭히지도 않으면서 성욕을 해소할 수 있어 사회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은, (대부분의)포르노에서 여성 일반을 대상화하는 효과를 간과하지요.


K: ‘효율적으로’, 즉 모든 것에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는 잘못된 논리 아닌가요? (일동 동의)


H: ‘효율적이면 그 자체로 정의롭다’는 주장이 옳다 그르다 따지기 이전에, 그런 짧은 문장이 가져오는 효과가 분명히 있어요. 주로 논의를 단순하고 납작하게 만드는 효과요.


Y: 맞아요. 니체의 사상 전체를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니체의 명언 한 줄만 뚝 인용해 놓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해버리고 단순한 뜻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요.

******************

H: …약자를 지키는 정의로운 정치인이 주거 안정을 위해 펼친 부동산 정책(임대료 상한제 등)이 실제로 가져온 결과가 약자의 삶을 더 위협하게 된 사례가 슬퍼요(함께 탄식). 이미 1970년대 미국에서 정의를 위해 펼친 정책이 의도와 다른 결과를 불러온 경험이 너무 많네요.


K: 정부가 시장의 플레이어가 되어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공공 주택공급을 크게 늘린 싱가포르에서만 다수를 위한 부동산 정책(임대료와 지가의 안정 등)이 성공했다고 들었어요. 


Y, H: 어떻게 해서 성공했는지 궁금하네요.... (후략)

*******************

H의 후기: 이번 장은 어려웠고, 오늘날 세계의 참 많은 것들을 경제학이 설명하려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효율성'과 '정의'라는 단어에서 큰 산을 마주친 듯 난감했다. 이건 또 뭔말인가... 혼자 읽었다면 여기서 끝났겠지만, 같이 계속 읽을 것이다^^. 

녹음을 들으며 정리하니, 줄이는 게 더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죽은 경제학자 불러다 이야기 듣기(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