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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 Sep 17. 2021

클라라 죽이기

텍스트를 넘나드는 논리퍼즐 게임


이공계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어떤 작품을 꼽을 수 있을까? 역시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S&M 시리즈는 공돌이 티가 팍팍나지. 일단 주인공들이 공대 교수랑 대학원생인 건 차치하고라도, 살인 동기보다는 수단에 집중하며 공학/과학적 아이디어 혹은 이미지를 트릭의 중핵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이공계 미스터리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https://brunch.co.kr/@nova-textus/20



이 작품도 딴은 이공계 출신 작가가 쓴 것이긴 한데, 본격 이공계 미스터리라 하기엔 좀 애매하다. 과학보다는 동화에 더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호두까기 인형>, <스퀴데리 양>, <모래 사나이> 등 호프만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의 모티브를 부품으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정교하게 짜맞춰 내고 있다. 호프만의 작품들을 미리 읽고 이 소설을 읽으면 훨씬 재미있을 듯. 일종의 하이퍼텍스트를 구현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야기 자체는 전작인 <앨리스 죽이기> 비해선 평이한 편이다. 전작의 세계관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아 왔기에 설정에서 오는 충격이 없고, 고어한 묘사도 훨씬 덜하고, 트릭참신성떨어진다. <앨리스 죽이기> 어찌 보면 비슷한 트릭을 쓰지만 그땐 '우와 이런, 생각도 못했네!'라는 느낌이었다면,  작품의 경우엔 ',  그랬어?' 정도였달까.


그래도 전작을 재미있게 봤다면 팬심으로 읽을 만한 작품이야. 이게 약간 <거울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이 있다. 등장인물이나 핵심 사건들이 거대한 기계 장치의 부품처럼 딱딱 들어맞는 느낌. 근데 그게 개연성이 높다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설정한 문법/규칙을 치밀하게 지킨다는 느낌이다. 그런 면에선 이공계스럽다. 인물들의 대화나 플롯에 논리 퍼즐의 뉘앙스가 짙게 스며있다.


리디셀렉트에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팅커벨 죽이기>까지 시리즈 전 작품이 다 올라와 있더라. 작가가 작년에 암으로 별세하였기에 더 이상은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이번에는 더 나은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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