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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Sep 27. 2024

61. 나는 여름이 좋았다

지구걱정 게으른 내걱정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해가 길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 어두워지는 겨울이 제일 싫었다.


올해는 정말 더웠다. 무더위에 아침부터 에어컨을 켠다. 자다가 새벽에 깨서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 필요없다던 더위 안타는 딸아이는 밤새 에어컨을 켜고 잔다.


더위탓인지 나이탓인지 갱년기 증세가 확 왔다. 등짝이 뜨거워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갑상선 호르몬 약 씬지로이드 부작용이 불면증이 생길수 있다고 한다.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골아떨어지는 축복이 덜 해졌다. 그래도 하루 건너 잠을 잘 잤다.  


올해 여름은 '누가누가 더 덥나' 아니 '어느 동네가 더 덥나' 알아맞추기라도 하듯이 오랜 만에 통화를 하면 얼마나 더운지에 대해 대화를 시작할 정도였다. 추석에도 더워서 에어컨을 켜고 아침 식사를 했다.


어느 카페에 갔다. 메모할 수 있는 질문지가 비치되어 있다. 파란색이 눈에 띠어서 한 장 집어 들고 펜을 꺼냈다.


'당신에게 여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해가 길어서 슬프지 않은

해가 길어서 행복한

... 여름


워킹맘 시절에


워킹맘으로 일을 할 때 겨울이 슬펐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면 캄캄해졌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아파트 장은 파장하고 텐트를 걷는다. 물 부어 불리는 떡볶이판을 쳐다보며 매운 눈물을 삼키곤 했다. 나는 겨울이 싫었다. 해가 너무 짧아서 서러웠다.


나는 해가 긴 여름이 좋았었다.


불면증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말았다. 낯설었다.


'눈을 감고 있는것만으로도 휴식이고 피로가 풀릴거야'

생각하면서 밤을 꼬박 새운 날도 있다. 양을 세지는 않았다.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할거라는 말이 있다. 밤새 에어컨을 켜고 초등학생 아이들 손에도 커다란 휴대폰이 들려있으니 지구는 얼마나 뜨거워졌을까. 에어컨을 켤 때마다 카톡을 열어볼 때마다 미안하고 신경이 쓰였다. 다 자업자득이다.


우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일까. 분리수거에 손톱까임을 기꺼이 하던 나도 느슨해졌다. 음료병에 포장지를 분리하지않은 지 꽤 됐다.


바닷가 불가사리를 집어서 바다로 보내주는 소녀를 보고 누군가 말했다지.


"그런다고 불가사리를 다 살릴 수 있나요?"


소녀가 말했다.


"적어도 제가 던지는 불가사리는 살릴 수 있겠지요"


자연과 공존을 어떻게 해야할까.


갱년기탓하기엔 내가 너무 게을러졌다.


나는 여름이 제일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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