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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Dec 02. 2024

63. 셀프미션,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고전이 답했다 저자 고명환 리스펙합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물 중에 글쓰기 가장 어려워 보이는 것에 대해 10분간 글쓰기


      


삼베보자기     


나는 삼베 보자기가 좋다. 이상하게 좋다. 언제부터 좋았나? 시댁에서 떡을 찔 때 삼베 보자기 위에 찌면 떡이 똑 똑 잘 떨어진다. 송편에 삼베 무늬가 찍힌 거 같으면 이상하게 그 송편이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어머니는 삼베보자기를 직접 짯다고 한다. 길쌈이라고 부른다. 세상 떠나실 때 장롱 위 박스에 담겨있던 손수 지으신 수의를 입혀드렸다.      


내가 삼베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어릴 적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집 골목에는 아주머니들이 함께 일하는 부업이 배달되곤 했다. 여름에는 삼나무 단을 실어나르며 바우네 골목 벽에 산더미처럼 삼나무가 쌓였다. 기다란 삼나무를 세로로 칼집을 내어 벗겨낸 다음, 겉껍질을 칼로 벗겨낸다. 그리고 삼나무 속살을 세로로 가늘고 같은 굵기로 찢는다.      


굵기가 같게 찢어진 삼나무를 실처럼 엮는다. 굵은 쪽 삼나무실을 잡고 끝에 가는 쪽에 다른 삼나무실 가는 쪽을 이어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돌돌 감아 묶는다. 묶은 부분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이어서 실을 만든다. 그리고 젓가락을 이용해서 실을 감는다. 숫자 8자 모양으로 지그재그 실을 감는다. 기호 무한대가 생각난 것은 성인이 되어서다. 실을 무한하게 감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중량이 되면 젓가락을 빼내고 삼나무 실뭉치를 흩어지지 않게 묶는다. 지금 생각하면 겨울철 달래묶음 같기도 하고 꽈배기 튀김 같다.   

   

우리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여름에는 빙 둘러 앉아서 삼나무 실을 만들고, 겨울에는 홍합을 다듬었다. 엄청 큰 자루에 담긴 홍합을 마당에 쏟아 놓고 여러 개씩 달린 홍합을 하나씩 떼 내고 정리하며 깨진 것을 골라내고 크기가 비슷한 것을 다시 자루에 담는다. 나는 시장에 가서 홍합을 보면 어릴 적 가난한 추억이 생각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싹 치웠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사다 드린 입어 보지도 않은 옷이 많았다. 형님들이 어머니를 기억하며 하나씩 유품으로 가져가자고 했다. 둘째 형님은 내가 어머니께 사드린 빨간 겨울 패딩을 챙겼고 셋째 형님은 주황색 바람막이를 골랐다. 동서는 긴장한 얼굴로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고, 나는 그럼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주방에서 시어머니가 직접 짠 낡은 삼베보자기를 가져왔다.      


큰형님과 둘째 형님은 낡아빠진 보자기를 뭣에 쓰려냐면서 웃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첫 추석에 나는 어머니가 해주신 둥글넙적한 개떡반죽을 하나 녹여서 내 손바닥만한 작은 개떡 서른 개를 쪘다. 두 번째 개떡을 찌다가 깜빡해서 삼베보자기 한 쪽을 태웠다. 놀랬다.       

                       

낡은 보자기는 한 쪽이 노르스름하게 탔다. 나는 깨끗이 빨아서 손으로 조심조심 반듯이 폈다. 그리고 표구하려고 벽에 꽂아두고 있다. 마음먹은 지 몇 년이 지났다. 나의 미루는 병을 어찌할까. 


셀프 미션, 30분 간 이만큼 썼음. 


글쓰기의 어려움. 길쌈하듯이, 세상에서 애쓰며 사는 거인의 어깨라는 날실을 잡고 나의 생각 씨실을 하나씩 엮어가야지. 인생은 직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야 기계에 패턴을 적용하면 뚝딱 하고 옷감과 옷이 생산되지만, 원래 우리의 삶은 삼나무에서 실을 뽑아 한 줄 한줄 엮어가는 게 아닐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신났다. 원래 글쓰기를 좋아한다. 오랫동안 끄적여왔다. 주로 네이버 블로그에. 


최근에 글 길을 잃었다. 


"글 길을 잃었어요" 


어쩌다 글 길을 잃었냐는 그녀의 질문에 뭐라 딱히 답하지 못했다. 


그저께 별마당을 운영하는 영풍문고에서 고명환 저자의 책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를 나우드림으로 구입했다. 와우!


대단하다. 하루 아침에 쨔쨘~ 하고 나타난 사람이 아니다. 치열하게 살았고 옳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멋진 거인을 만났다. 유튜브를 찾아봤다. [고명환이 끌려다니는 삶에서 이끄는 삶으로 전환한 계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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