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버스를 탔는데
벌이 나를 괴롭힌다.
내가 피하니까
앞에 가서 또다시
사람을 괴롭힌다.
내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잠시 벌의 존재를 잊었다.
갑자기
버스 기사님께서
분주하시다.
죽여 버리겠어
신문지를 들고
벌을 때려
패대기치신다.
아까 그 벌이
기사님한테 까지
간 것이었다.
문득
벌이 불쌍했다.
왜 버스에 들어와서
운명을 달리한 것일까?
밖에서 훨훨 날아다녔으면
아무도 건들지 않을 텐데 말이다.
역시 벌에게 어울리는 장소는 들판이다.
어울리지 않은 장소에선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벌의 죽음을 보면서
문득 장소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올해 들어
어디에 내가 있느냐에 따라
내 행동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호주 브리즈번으로
여행을 갔을 때,
에어 비엔비에서
꽤 괜찮은 아파트를 렌트했다.
혼자 머물기에
아까울 정도로
매우 근사한 집이었다.
인테리어가 잘된 집과
어질러져 있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
열심히 치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낡은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던 내가
내 집에서는 하지 않던
나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멋진 집이
나를 깔끔히
청소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까지,
500에 50짜리
낡은 원룸 오피스텔에서
2년 동안 숨 막히게
지내왔다.
몇십 년 된 곳이었기 때문에
내부는 칙칙했고,
맨 꼭대기 층에
살아서인지 샤워기
물은 졸졸 나오고,
상하수도 악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쉬어도
마음의 안정이
취해지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아마도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동네 이름을 말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곳은 대한민국
대표 부촌이었다.
집 밖을 나가면
없는 것이 없다.
그곳에선 원하기만 하면
좀 비싸긴 해도
어렵지 않게
뭐든지 다 살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쉽게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교통 환경까지
다 갖춰져 있다.
나가면 지하철, 버스, 택시는
항상 내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는
항상 내 차의 전용
활주로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손쉽게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는 곳에
살다 보니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욕망이
다 채워지면서
나는
점점 나태해져 갔다.
집 밖에선 육식 공룡처럼
활개 치다가도
답답한 집 안에만 들어오면
가만히 있는 식물인간으로
둔갑했었다.
그 식물인간이
경기도 하남으로
이사를 왔다.
신축 아파트였기 때문에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시설도 최신식이다.
처음으로
내 방 가구도
직접 내가 다 고르고
그동안 쓰던 이불까지
싹 다 바꿔버렸다.
육식 공룡인지
식물인간인지도
분간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상이었다.
내 물건들에
나의 의지가
반영되다 보니
그것들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고,
행동의 책임감들이
점점 샘솟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마련한 내 물건들이
나를 위한 것이니
소중하게 다뤄줘야 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침엔 꼭 이불을
개고 나가고,
여유롭게 일어나
밖에서 먹을 도시락을 챙긴다.
하지만
하남에 오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다.
신축이다 보니
아직 상가가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원하는 것이 생기면
이 주변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하철역도 멀기 때문에
항상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배차간격이 너무 크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다가
그 시간에 딱 맞춰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이
참 감사하다.
그동안 규칙이 없었던
내 삶에 새로운 습관을
만들게 했다.
필요한 것을
미리미리 생각하고
준비하게 되었고,
내 행동에 시간을 제동을 걸어
생산성 없는 일에 대한
시간 투자를 줄여 나갔다.
오늘도 나는
버스를 탄다.
처음에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파트 앞에서 정류장까지
전력 질주를 했었지만,
오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 시간 5분 전에
버스를 탔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은
출근길에 올라탔음에도 불구하고
날 여행하게 만든다.
여행이
꼭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곳에
가는 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새롭게 정의하고 싶은
여행이란 단어의 뜻은
'이동하면서 경험하는 새로운 생각'
이다.
'여행하다'라는 의미의
'travel', 'trip' 이란 단어에
'이동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과 같이,
여행 장소와 상관없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마주침과 깨달음
을 느꼈다면,
그것이야 말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득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의 한계가 자기 세계의 한계
라는 말이 떠오르며
머릿속에 전구가 켜졌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니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경험'
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깨달음을 얻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나는
남들이
'지옥철'이라고 부르는
'우리들의 고마운 여행 수단인 지하철'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