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의 품절남녀

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by 미쓰양푼이

신바시 역을 따라

조금 걸어가다 보면,

일본의 능력 있는 화이트 칼라들이

퇴근 후 모이는 술집이 있다면서

료코는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내가 이곳에서 근사한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바람이었다.


료코는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3년 전에 결혼한 친구이다.


어느 날 갑자기 14살 연상과

결혼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다른 친구들보다도

텐션이 높았던 료코가

차분해진 모습으로 남편과 함께

한국에 놀러 왔을 때,

그 모습이 나에겐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오랜만에 만난 료코는

현재 겪고 있는 결혼생활의

고충들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는 아직 혈기 왕성한 나이인데

남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왜 자신을 여자로

바라봐주지 않느냐는

료코의 질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료코가 여자로 느껴진다기보다도

그녀를 보살펴야겠다는

책임감을 더 크게 느낀다고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여자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지만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와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들의 결혼을

지속시키게 하는 힘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녀의 불륜이다.


료코의 남편은 신뢰라는 명분 하에

그녀를 구속하지 않는 편인데,

그것이 료코를 불륜의 길로

인도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료코가 퇴근 후 밤늦게 까지

동료들과 술을 마셔도

그것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믿기 때문에

그녀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일까?

아니면 본인이 해주지 못하는 역할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 남편의 마음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어쨌든 집에 빨리 들어가야겠다는

부담감이 전혀 없었던 어느 날,

우연히 회사에서 잘 나가는 상사와

고급 호텔에서 단둘이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이 료코의 결혼생활을

지속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료코는 각자가 줄 수 있는 것을

받기만 하면 됐다.

남편에게는 정신적인 사랑을.

직장상사에게는 육체적인 사랑을.


료코가 이야기하는

이 삼각관계에서는

쿨내가 진동을 한다.


심플하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이야기가

되어 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난 일본인들은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술술 잘도 이야기한다.


료코와 함께 찾아 간

긴자 술집에서 우리에게

합석하자고 한

남자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옆 테이블에 있었던

남자 2명이 자연스럽게

우리 대화에 끼어들더니

나와 료코를 폭소하게 만든다.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서로의 결혼 유무에 대해서

물어보는 순간이 왔다.

충격적이었다.


나만 싱글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 둘에게도

료코와 똑같이

불륜 상대가 있다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것이 일본만의

사회 트렌드인 것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비일비재한 일인데

일본인들이 솔직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는 것 일까?


사실은 후자 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결혼한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주변에 있는 싱글남들 중에서도

유부녀들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유부녀들은

결혼하자고 푸시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불륜이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역시 불륜은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에겐 그들을

판단할 권리가 없다.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이 다르고,

서로에게 놓인

상황들이 다른데

그것에 대해 내가 옳다,

나쁘다 평가할 수 있을까?


그저 난 내 친구 료코가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만 머리가 아파온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해서,

과연 나에게는 그런 불행한 일들이

찾아오지 않게 될까?


현재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상황이 의도치 않게

나에게도

찾아올까 봐

나는 두려워할 뿐이다.